[칼럼] 신뢰의 갈림길에 선 대학
[칼럼] 신뢰의 갈림길에 선 대학
  • 최진호 <한양대학교 컴퓨테이셔널 사회과학 연구센터> 박사후 연구원
  • 승인 2020.06.01
  • 호수 151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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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한양대학교 컴퓨테이셔널 사회과학 연구센터> 박사후 연구원

 

얼마전 맥북 프로를 장만했다. 원격강의 준비를 핑계로 말이다. 부득이 카페에서 작업하는데 전과 달리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다녀오는 사이 누군가 맥북을 가져갈 것 같았다. 결국 화장실에 들고 갔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게 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자본이 확충된 나라일수록 거래비용이 줄어들고 효율성이 높아져 전반적인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을 연구로 증명했다. 국민들이 서로 믿는다는 것이 국가의 경제수준을 높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행복경제학 창시자 존 헬리웰 교수의 연구에서는 자신이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1명 생길 때마다 생활만족도가 증가하는데, 그 증가폭은 소득이 3배 늘어날 때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가 개인의 행복을 높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는 어떨까. OECD가 몇 해 전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각각 26.6%, 77.5%가 그렇다고 응답해 23위, 34위를 기록했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19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자본은 167개국 중 142위였다. 오래전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국을 저신뢰사회에서 조금 발전한 형태로 분류한 것과 다르지 않다.

객관적 지표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향약, 두레, 품앗이 같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돕는 상부상조 DNA가 있기 때문이다.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했고, 태안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에 100만명의 봉사자가 기름닦기에 동참한 저력이 있다. 지금은 착한 임대인운동이나 농특산물 팔아주기, 마스크 양보 등 다양한 캠페인에 참여해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이겨가고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연대하고 소통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코로나로 대부분 대학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됐다. 학생들이 녹화영상을 재생해서 출석만 인증하고 다른 일을 하진 않을까? 삼삼오오 모여 시험보거나 단톡방에서 답을 공유하진 않을까? 그래서 강의영상 중간에 ‘깜짝과제’를 숨겨두기도 했고, 시험의 경우 단답식 배점을 0.1점으로, 서술과 논술식은 30점 중에 29점으로 하는 꼼수를 생각해냈다.

어떤 학생은 과제 게시판에 강의영상으로 안내한 과제와 무관한 내용을 제출했다. 담당교수가 제출한 내용을 읽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체득으로부터 비롯된 확신 때문인 것 같다. 절대평가로 바뀌었으니 점수를 잘 달라는 다소 노골적인 익명 건의사항도 있었다. 대부분은 출석, 과제, 영상녹화 방식의 개인발표, 시험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출강하는 어떤 학교에서 공문이 왔다. 몇 주 연속 과제로 대체하거나 담당교수 강의가 아닌 인터넷상에 공개된 누군가의 강의를 링크하고 요약정리해서 제출하라는 방식으로 수업하는 사례가 있어 민원이 제기되고 있으니 유의해달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시위나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코로나가 대학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방구석 강의를 진행하면서 대학에서의 신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대학은 지금 신뢰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지금은 카페에서 맥북을 테이블에 놓고 화장실에 최대한 빨리 다녀온다. 부끄럽게도, 조심스럽게, 대학 구성원 간 신뢰의 폭을 넓혀가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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