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진심이 통하는 국민청원이 되길
진실과 진심이 통하는 국민청원이 되길
  • 정채은<문화부> 정기자
  • 승인 2020.05.24
  • 호수 1512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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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은<문화부> 정기자

 

지난 3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이하 국민청원) 게시판에 ‘25개월 된 딸이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소식을 접한 온 국민은 분개했다. 해당 청원은 올라온 지 이틀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최종적으로 53만 3천883명의 사람들이 동의하며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청원인이 20만 명을 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청원 내용은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가해자로 묘사된 남자아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청원 당사자 A씨가 올린 글 속에 담긴 너무나도 그럴듯한 사건 정황에 53만여 명의 국민이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이다. 결국 A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한편으론 이 끔찍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국민청원 게시판은 신뢰성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청와대는 지난해 3월 국민청원 게시판 신뢰도 향상을 위해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청원 내용이 게시판에 공개되는 ‘사전 동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여전히 ‘거짓 청원’ 사건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현재까지 거짓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국민청원 게시판의 신뢰도를 함께 지켜내 달라’는 당부의 말뿐이었다. 

지금까지 국민청원을 통해 국민 개인 차원에서는 도저히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공론화해 실제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나 음주운전 처벌 강화 등의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분명 국민청원은 사회 내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국민청원은 2017년에 신설된 얼마 되지 않은 정책이지만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만 보더라도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국민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국민청원의 역할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는 거짓 청원 사건은 국민의 목소리에 공식 답변의 책임이 있는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국민청원에 동참해 함께 공감하고 분노했던 사람들까지 한순간에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무엇보다 거짓 청원 조사에 소모된 인력과 시간 등의 행정력 낭비는 더 절실한 청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국민청원은 힘없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개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 지도 모른다. 국민청원의 신뢰도가 떨어져 소통 창구의 역할이 무력해진다면, 국민청원을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했던 힘없는 누군가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국민의 뜻을 모으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만큼 거짓 청원 문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결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청원 제도를 이용하는 데 경각심을 갖고, 어떻게 국민청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지 모두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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