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랐다
[칼럼] 디지털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랐다
  • 김수연<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사원
  • 승인 2020.05.03
  • 호수 151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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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사원

기술의 발전과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 온라인 서비스의 대중화는 초소형 카메라의 발명과 촬영물에 대한 복제·유포·변형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은 비동의 불법 촬영과 불법 촬영물에 대한 유통을 조직적으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실제로 성폭력 범죄 중에서도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행위는 2006년 517건에서 2015년 7천730건으로 8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불법 촬영 관련 범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합의된 개념은 아직까지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만 ‘디지털 성범죄(몰래 카메라 등) 피해방지 종합대책’ 기준에 의하면 ‘사이버 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불법 촬영물 유포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처벌이 가능한 범죄행위의 용어 정의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크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세 가지의 규정 모두 가해의 행위에 비해 법적 제재가 낮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의 판례를 살펴보면 무죄와 벌금형이 가장 많이 선고됐고, 가장 무거운 형벌인 징역형은 강간 또는 강간 미수와 동시에 불법 촬영이 가해졌을 때, 특히 아동·청소년이 피해 대상인 경우 선고됐다. 하지만 2심과 3심에서 다시 감형된 모습을 보였다. 

2018년 스브스뉴스가 기획한 <디지털 성범죄 박멸 시리즈>에서 보복성 영상물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면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가 해당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이 미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피해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가해자는 “초범이고, 심신이 미약한 상태이며, 이를 토대로 자수를 할 것이기 때문”에 집행 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칠 것이라 자신했고,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보복성 영상물은 주로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 몇백 원 정도의 푼돈에 판매되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경우 ‘유작’이라는 ‘프리미엄’을 얻고 더욱 비싼 값에 거래된다. 이러한 현실에 처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외상 후 격분 장애와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다.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으며 이 사태의 처벌에 대해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사가 n번방 사건을 심리해서는 안 된다’는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결국 판사는 교체됐다. 지금도 SNS에선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와 같은 해시태그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응답할 차례다. 판결을 먹고 자란 디지털 성범죄의 썩은 뿌리를 도려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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