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의 식지 않는 논란, 도서정가제
17년간의 식지 않는 논란, 도서정가제
  • 전다인 기자
  • 승인 2020.05.03
  • 호수 1510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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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이로 인해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청원인은 △도서 초판 발행 부수 감소 △평균 책값 증가 △출판사 매출 규모 감소 등을 지적하며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지난 1월 어느 작가는 도서정가제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제4항에 의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이를 계기로 도서정가제는 위헌확인을 위한 헌법 소원 심판에 들어갔다. 도서정가제는 2010년 출판사들이 제기한 헌법 소원 심판 청구 이후로 10년 만에 다시 법정에 오른 셈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대체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끊이지 않는 것일까.
 

도서정가제란?
도서정가제는 도서 시장 내 과열된 책값 인하 경쟁을 해결하기 위해 정가보다 책을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다. 2003년 2월부터 시행됐으며 시행 초엔 온라인 서점에 한해 약 10%의 할인율을 적용할 수 있게 했지만 2014년부터는 개정된 법에 따라 온·오프라인 서점 모두 최대 15%까지 할인이 가능하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3년 동안만 시행되는 한시적인 법안이었지만, 2017년 연장됐다. 2017년 당시에도 도서정가제 연장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었지만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었다. 현재의 도서정가제는 오는 11월까지 시행되며 이후 다시 심판대에 오를 예정이다.
 

도서정가제, 어떤 효과를 가져왔나
도서정가제는 소규모 출판사와 대규모 출판사가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위해 도입됐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출판업계는 수많은 신간 도서 사이에서 자사의 도서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격 할인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자본 규모가 큰 대규모 출판사와 달리 소규모 출판사는 가격 할인 경쟁에서 버티기 어려웠다.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이홍<한빛비즈> 편집이사는 “대규모 출판사는 자사의 신간 도서가 가격 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출판사는 그렇지 못하다”며 “도서정가제는 책이 오로지 품질로만 경쟁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과 동네서점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행된 제도기도 하다. 할인율을 제한함으로써 온라인 서점과 동네 서점의 가격 차이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 편집이사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율이 줄어 동네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경쟁 격차를 줄일 수 있어 동네 서점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된 후 책값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잇달았다. 그러나실제로 2014년 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부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발행 도서의 평균 정가는 6.2%p 하락했고, 가계 부담이 큰 유아와 아동도서의 경우엔 18.9%p 하락했다. 

도서정가제의 부작용
초기의 도서정가제는 출간한지 18개월이 된 책에 한해서 할인을 규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어떤 책이든 일정 비율 이상의 할인율 적용이 금지됐다. 이로 인해 도서 재고를 할인해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책을 할인 판매해 재고를 덜 수 있는 영업 방법이 사라진 셈이다. 이 편집이사는 “예전에는 재고 도서를 도서전과 같은 곳에서 할인 판매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고를 적절하게 방출할 수 없다”며 “책의 정가를 받고 팔아도 운영이 어려운 소규모 출판사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도서정가제로 도서 장르의 다양성이 줄고 신인 작가들의 도서 출판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도서정가제로 재고 처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출판사들은 성공이 보장된 소위 스타작가의 책만 내거나 흥행이 보장된 도서만 출판한다는 것이다. 이병태<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재고 도서까지 할인율을 제한하면 출판사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책만 출판하게 된다”며 “출판사의 수요가 인기 있거나 유명한 작가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서 도서 장르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신인 작가의 출판이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도서정가제가 나아가야 할 길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도서정가제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편집이사는 “이상적인 도서정가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편집이사는 “공식적인 기관이 주최하는 도서전에서는 할인 판매를 가능하게 해주거나 출간한 지 오래돼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없는 도서에 한해서는 할인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안이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가 합리적인 제도로 오랜 시간 유지되기 위해선 소비자와 공급자의 입장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돼야한다. 오는 11월, 도서정가제가 양측의 입장에 수렴하는 안정된 제도로 나아가길 바란다.

도움: 이홍<한빛비즈> 편집이사
이병태<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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