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중하라. 지자체는 시장독점의 해결사가 아니다
[사설] 자중하라. 지자체는 시장독점의 해결사가 아니다
  • 한대신문
  • 승인 2020.04.12
  • 호수 150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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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이재명<경기도청> 도지사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 시장 독점 기업인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을 향해 “배민의 수수료 체계 개편은 독과점 횡포”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또한 이 지사는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독점과 횡포를 억제하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만이 아니라 모든 정부 기관의 책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군산시 공공 배달앱인 ‘배달의 명수’의 공동사용 동의까지 받으며 대체 공공앱 개발 의지를 드러냈다.

앞선 지난 1일, 배민은 수수료 체계를 ‘오픈 서비스’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업주들은 자신의 업장을 광고 화면에 등록하려면 주문 금액당 5.8%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문제는 오픈 서비스 이용이 반강제적이라는 것이다. 경쟁업체와 소비자 대부분이 배민을 사용하는 와중에 오픈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으면 업장 노출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배민이 타 배달앱 ‘요기요’와 ‘배달통’과 합쳐져 시장을 독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계속된 비난에 지난 10일, 배민은 개편안을 백지화했으나, 독점기업의 시장 영향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 전체가 독점기업의 독단에 곧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가 분명 존재한다. 바로 ‘공정위’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며 공정위는 배민의 시장 독점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만약 독과점 폐해가 입증되면 공정위는 ‘배민 기업결합 취소’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이 상황에 이 지사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움직임은 공정위의 권한을 부정하는 것이다. 임영철 변호사는 공정위를 “사안의 위법성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재판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불공정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기 위해선 이해관계나 정치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사는 지난해 10월, 공정위의 권한을 경기도에 일부 위임해 달라 요청했다. 이 지사는 지난 8일에도 공정위에 “배민의 기업결합을 불허해야 한다”고 언질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지사의 행동은 공정위의 순수한 권한을 침범하는 간섭과 월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불어 ‘배민에 대항하기 위해 지자체가 공공앱을 만든다’는 발상도 따져봐야 한다. 지자체가 공정위의 판단보다 우선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전례로 남으면 공정위의 존재는 무색해진다. 공정위라는 불공정 행위 방지 체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지속가능성 역시 의문이다. 공공앱 ‘배달의 명수’엔 지난해에만 1억3천만 원의 개발비가 투입됐다. 여기에 반영구적인 유지·관리비도 필요하며, 앱 규모가 확대되면 비용은 더욱 상승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공공앱은 수익 창출이 주요 목적이 아니기에,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독과점은 지금과 같이 다양한 기업이 세워지고 합쳐지는 난립의 시기엔 아주 복잡하게 발생한다. 이런 일을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가 바로 공정위로, 이를 거스르고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것은 단기의 극약처방일 뿐이다. 공정한 시장 경쟁을 바란다면, 지자체는 공정위가 합리적 판단을 할 수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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