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 비극을 기억하려 떠나는 우리들의 발걸음
다크 투어리즘, 비극을 기억하려 떠나는 우리들의 발걸음
  • 정채은 기자
  • 승인 2020.03.15
  • 호수 150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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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MBC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 한반도 편」에서는 ‘제주 다크 투어리즘’이 주제로 다뤄져 화제를 모았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제주도 내 일제강점기 일본 군사시설인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알뜨르비행장’ 등을 방문하며 제주도에 산재한 비극의 역사를 다뤘다. 이는 시청자에게 큰 감명을 남겼고, 이후 연장방송 요청이 쏟아졌다. 
 

어두운 역사 마주하기, ‘다크 투어리즘’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등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 및 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다. 이는 역사 속 교훈을 되새기고, 반성의 목적을 지닌다는 점에서 관광이나 휴양 등을 목적으로 한 일반적인 여행과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국내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는 △거제포로수용소 △경찰청인권보호센터(남영동대공분실) △비무장지대(DMZ)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주 4.3평화공원 등이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사건·사고로 얼룩진 어두운 역사는 감춰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과거의 참사를 직면하고, 더 나아가 이를 기억에 남겨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경호<부산 N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단순 관광이나 여행보다는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고 이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직접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2018년 제주 4.3사건이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제주도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국내·외 제주 4.3길 탐방객은 9천141명으로 2017년 하반기 동안 제주 4.3길을 찾은 국내·외 탐방객 3천466명에 비해 약 164%p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지자체도 비극적인 역사를 지닌 공간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제주도는 ‘2019 제주올레걷기축제’에서 <다크투어리즘 제주와 4.3>, <다크투어리즘 제주와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한 건축문화해설 코스를 운영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영화 「택시 운전사」가 흥행하면서 광주문화재단은 택시를 타고 5.18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초기에는 택시 5대로 시작했지만, 전국적으로 신청이 빗발쳐 운행하는 택시 수를 계획보다 늘리기도 했다.
 

희미해진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
대구 중구가 조성한 순종어가길은 일제강점기 때 어지러워진 민심을 살펴보기 위해 영친왕이 이토 히로부미 등과 대구, 부산, 마산을 둘러본 남순행의 한 구간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순종어가길은 백성의 삶을 돌아보는 순수한 취지의 민정 시찰이 아니라 일제가 흉흉해진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순종황제를 내세운 것이라며 순종어가길에 대한 역사 왜곡을 지적해 논란이 일었다.  다크 투어리즘 운영에 앞서 선행돼야 할 것은 역사지식에 대한 충분한 고증과 논의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배움과 성찰이라는 다크 투어리즘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크 투어리즘은 관람지에 대한 ‘엄숙한 추모의 공간’이라는 관람객의 의식이 필수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관광객의 태도도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김남조<사회대 관광학부> 교수는 “다크 투어리즘 장소는 역사의 현장이기에 숙연해지고, 교육과 성찰의 의미를 느껴야 하지만 몇몇 방문객들은 이 장소를 단순히 관광의 즐거움, 유흥의 일과로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이런 추모의 공간이 지나간 과거의 공간, 단순한 전시의 공간이 되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과정이 또 다른 일반적인 관광처럼 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진정한 역사교훈여행이 되기 위해 
다크 투어리즘이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고, 역사교훈의 현장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역사의 정확한 진실을 전한다는 다크 투어리즘의 목적을 유념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장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관광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하며, 관광객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해설사 양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 씨는 “청소년기에 자기 고장의 역사에서 시작해 역사 학습의 범위를 넓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 씨는 “이를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이 성장한다면 다크 투어리즘의 공간도 단지 보는 대상에서 참여하는 대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오랜 시간이 축적돼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화려하고 밝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둡고, 가슴 아픈 점도 많다. 그것이 참담할지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충분한 고증과 논의가 이뤄진 관람지와 깨어있는 관광객의 태도를 바탕으로 우리의 아픔을 보존한다면 이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더 나은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움: 김남조<사회대 관광학부> 교수
정경호<부산 N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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