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선물하는 닥터헬기
생명을 선물하는 닥터헬기
  • 노승희 기자
  • 승인 2019.12.31
  • 호수 1506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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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경기도에서는 전국 최초로 24시간 응급으로 활동할 수 있는 닥터헬기가 도입됐다. 경기도 닥터헬기 도입 후 39일 동안 야간출동 6건과 충청남도 등의 관할 외 지역 출동 1건을 포함해 총 19건의 출동이 있었으며 중증외상환자 17명의 생명을 살렸다. 이는 2, 3일에 1명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이에 닥터헬기는 ‘국민 생명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고 평가받는다.

응급환자 살리는 닥터헬기
닥터헬기는 의료진이 탑승해 출동하는 헬기로, 응급환자 치료와 이송 전용으로 사용돼 일명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린다. 예를 들어, 심한 외상이나 심장 및 뇌혈관 질환과 같은 신속한 응급처치와 이송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닥터헬기는 5분 이내로 의료진을 태우고 출동한다. 

현재 국내에는 총 7대의 닥터헬기가 운용되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 인천 가천대길병원과 전남 목포한국병원의 닥터헬기 도입을 시작으로 △2013년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경북 안동병원 △2016년 충남 단국대학교부속병원과 전북 원광대학교병원 △2018년 경기도 아주대학교병원까지 전국적으로 닥터헬기가 확산됐다.

도서·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도입된 닥터헬기는 지역 간 응급의료 수혜격차를 해소하고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사수해 사망과 장애 감소에 기여한다. 응급 환자에게 시간 내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닥터헬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닥터헬기의 필요성을 일찍이 절감해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닥터헬기 보유 대수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이미 오래 전에 닥터헬기를 도입한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국은 닥터헬기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다. 미국은 929대, 독일은 80대의 헬기를 보유·운용 중이며 특히 독일의 경우, 전국을 반경 50km의 원으로 구분해 하나의 원에 한 대씩 헬기를 배치하며 접근성을 높였다.
 

▲ 지난해 8월, 경기도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응급의료전용헬기 종합시뮬레이션 훈련’에서 119구급대가 닥터헬기로 환자 인계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기도 아주대병원에 최초로 24시간 운영 닥터헬기가 도입되며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닥터헬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범부처 응급의료헬기 공동운영 규정’을 제정했다. 위 규정은 기존의 인계점과 더불어 각 정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이착륙장 인계점과 공동으로 활용 가능하게 했다. 오직 인계점에만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착륙장이 아닌 장소에도 응급의료헬기가 착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비인계점에 착륙할 때는 안전을 위해 정부기관 간 상호 협조하도록 했다. 또한 해당 규정은 정부 부처의 헬기를 공동 활용한다는 점을 포함해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7대의 닥터헬기 이외에도 △경찰청 18대 △국방부 의무헬기 7대 △보건복지부 6대 △산림청 47대 △소방청 30대 △해양경찰청 18대 총 126대의 헬기가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윤<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각 부처의 헬기를 환자 이송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규정 제정 이후에도 닥터헬기 운용 상의 한계는 여전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윤 교수는 “헬기들이 각기 다른 기관에 소속돼 있고 각 기관에 따른 고유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원활한 운영이 어렵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닥터헬기 운영 상의 여러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내 닥터헬기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닥터헬기의 비상을 막는 문제들
우리나라 닥터헬기의 국내 정착을 막는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대다수의 닥터헬기가 야간운행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소형 헬기 기종은 100km 이상의 장거리 운항과 고압선 등 장애물이 잘 보이지 않아 야간 운항이 불가능하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닥터헬기인 H-225 기종만 대형헬기이며 나머지는 소형 헬기인 AW-109 기종이다. 김윤 교수는 “야간 항법장치가 있는 헬기가 도입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응급의료 현장에 불합리한 탁상 규제 역시 닥터헬기 운영 상의 고충으로 지적된다. 김성태<원주세브란스병원 항공의료팀>  씨는 “현재 닥터헬기 규제가 각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일화된 체계로 이뤄져 있다”며 “도서, 산간지역과 도시지역의 상황이 엄연히 다른데 한 가지 시스템으로 운영을 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 ‘응급의료전용헬기 종합시뮬레이션 훈련’에서 닥터헬기가 119구급대에게 환자를 인계 받은 후 이륙하는 모습이다. 

닥터헬기를 ‘긴급항공기’로 분류한 항공안전법도 문제다. 긴급항공기는 소방헬기 같은 ‘국가기관 항공기’와 달리 출동 후 경로를 바꾸려면 반드시 지상에서 근무하는 운항관리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응급의료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탁상규제의 전형이다. 김성태 씨는 “닥터헬기의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점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융통성 있는 닥터헬기 운영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윤 교수는 “닥터헬기가 도입된 지 9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출동횟수가 적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며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헬기 운영체제의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약 3년 동안 닥터헬기 출동이 7천9백57건 접수됐지만 △기상제한 △다른 임무수행 △이착륙장 사용불가 △임무시간 부족 등의 사유로 2천3백48건의 출동이 기각 및 중단됐다. 이는 전체 출동접수 건수 대비 무려 30%에 육박하는 수치다.

닥터헬기 소음에 불쾌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닥터헬기의 국내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성태 씨는 “닥터헬기가 머물 수 있는 계류장이 필요한데, 현재 근무 중인 병원에서는 임시로 다른 계류장을 사용하고 있다”며 “주변 시민들의 민원 때문에 장소 선정이 어려워서 닥터헬기를 사용한 지 약 8년이 돼감에도 여전히 계류장을 짓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소음 민원은 닥터헬기 운영에 차질을 일으킨다. 실제로 2018년, 경기북부 권역외상센터의 닥터헬기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잦아진 탓에 외상센터 폐쇄가 거론되기도 했다. 서울지방항공청에 따르면, 민원이 해결되지 않을 시 병원에서 사용하는 헬기 운영이 취소되기 때문에 민원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닥터헬기,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서
닥터헬기는 골든타임 내 응급환자를 수송하기 위해 반드시 확대돼야 할 의료수단이다. 현재 정부는 닥터헬기를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닥터헬기 소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닥터헬기 소생 캠페인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닥터헬기의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은 115데시벨 정도에 불과하고, 이는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같은 데시벨이다. 본 캠페인은 SNS를 통해 사회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과 시민들이 직접 풍선을 터트려 소음 정도를 들려주고, 함께 캠페인에 참여할 3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에게 닥터헬기의 운영에 관한 이해를 구하고 닥터헬기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길 바라는 취지다. 
 

▲ 이국종<아주대 권역외상센터> 센터장과 성윤모<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함께 닥터헬기 소생캠페인 릴레이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김윤 교수는 “닥터헬기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음은 참을만하다는 반응이 있다”며 “시민들에게 왜 그런 소음을 내면서까지 헬기를 운행해야 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닥터헬기 상용화를 위해선 시민들의 의식개선과 더불어 정부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윤 교수는 “외상환자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고 최종 치료까지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닥터헬기가 꼭 필요하다”며 “닥터헬기로 환자를 이송해 골든타임을 사수해야 하는 지역은 주로 대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나 오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도 꼭 확장돼야 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도움: 김성태<원주세브란스병원 항공의료팀> 씨
김윤<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
사진 출처: 경기도청 홈페이지
동아일보 2019년 11월 27일자 C3면 1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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