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고통에 시달리는 청소년 · 군인 성소수자
이중고통에 시달리는 청소년 · 군인 성소수자
  • 한대신문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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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연구원에서 실시한 ‘2018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를 나의 이웃, 직장동료,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1%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는 실태조사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과반수를 넘은 결과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1일 진행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집회에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단체가 ‘NO SAME-SEX  MARRIAGE’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처럼 아직 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와 군인 성소수자는 성소수자인 동시에 학교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 내에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동성애자 지우는 성교육 표준안
청소년 성소수자는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차별받는 동시에 이성애자를 전제로 하는 교육 과정 탓에 그들의 존재는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신을 중학교에 재학 중인 동성애자라고 밝힌 한 학생이 ‘초·중·고 교과서에 이성 친구라는 단어를 고쳐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제 존재가 학습의 장에서 부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성 친구·이성 교제를 애인·연인·연애와 같은 말로 변경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2015년에 배포한 ‘성교육 표준안 연수자료’에는 ‘동성애에 대한 지도: 허용되지 않음’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교육부가 학교 내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소수자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교사 교육의 영역에서 철저히 침묵의 대상이며 투명 인간과도 같은 존재다.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선 올바른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추진 계획으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개편해 올해 상반기 중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2월 이후로 개편 작업은 중단됐다. 장예정<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정책담론팀장은 “동성애를 문제시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청소년 성소수자일수록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도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며 “성소수자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인 성소수자 인권침해 심각해
육군과 해군의 성소수자 색출사건이 알려지며 군인 성소수자 인권침해의 심각성도 드러났다. 지난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이 군인 성소수자를 색출해 군형법 92조 6 위반으로 형사 처벌한 사건이 있었다. 군형법 92조 6은 군인과 군인에 준하는 사람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다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당시 사건으로 23명의 군인이 입건됐고 그중 5명의 군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그 가운데 4명이 대법원판결을, 1명은 고등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형남<군인권센터> 기획정책팀장은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으로 입건된 23명은 모두 합의로 사적인 공간에서 성관계했지만,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수사받았다”며 “현재까지 △보직 차별 △생활고 △진급 누락 △트라우마를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에서도 지난 3월 상담 내용을 빌미로 성소수자 색출 작업이 있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해병 A씨가 상담관을 찾아가 성적 지향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다 다른 군인과 합의로 성관계를 했다고 고백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상담관은 A씨가 속한 부대 상관에게 이를 보고했고, 헌병 수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아웃팅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고, 인격 모욕적인 발언이 오갔다.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경우, 피해 군인 중 11명이 이 조항에 대한 위헌 법률 심판을 신청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피해 군인들과 함께 대법원에 계류 중인 4개의 사건에 대한 무죄 선고를 촉구하며 ‘10만인 탄원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해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또한 수사 과정 중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어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군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건가.’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한 말이다. 헌병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피해자도 있을 만큼 성소수자 색출사건은 이들에게 큰 정신적 피해를 줬다. 그런데도 군형법 92조의 6의 존재로 이들은 정신적·경제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김 팀장은 “군형법 92조의 6은 △군부대 내에서 이뤄졌는지 △군인이 비번 혹은 휴가 때 이런 행위를 했는지 △이성 간 혹은 동성 간 항문성교 처벌 여부 △성적 행위의 합의 여부 등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관습법적으로 동성 군인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데 쓰인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군형법 92조의 6으로 군인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 자체가 문제 된다”며 “군형법 92조의 6이 폐지돼야, 군인 성소수자 인식 개선에 대한 담론을 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차원의 약진이 필요한 시점
올해는 처음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이 절반을 넘은 성소수자 인권에 유의미한 해다. 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와 군인 성소수자가 학교와 군대 내에서 겪고 있는 차별은 여전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대 단체의 강한 반발로 인해 성소수자 인권보호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부재한 상황이다. 장 팀장은 “성소수자 차별 근절을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필요하다”며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이 제도권에 들어와야 인식 개선이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성소수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다. 하루빨리 제도적으로 성소수자를 보호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도움: 김형남<군인권센터> 기획정책팀장
장예정<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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