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설에 나타난 음식 이야기
[칼럼] 소설에 나타난 음식 이야기
  • 김미영<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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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음식은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기본적인 물질이다. 인간의 생리적 현상과 사회관계 유지에 음식의 역할이 큰 몫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욕망과 충족감은 지속성이 짧기에 음식 섭취를 위한 활동은 인간의 행위 중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인간의 삶 중에서 ‘먹는 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활동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황석영의 단상 속에도 이와 같은 ‘먹는 행위’의 특성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끼니’가 생명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활동 시간을 적절히 ‘분할’해주는 것에도 의미를 두었다. 특히,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먹는 행위와 시간의 의미, 인간관계에 대하여 천착하였다. 그의 말에서 음식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의 사회성과 서사성을 알 수 있다. 황석영 외에도 많은 문인들이 음식과 관련되는 산문을 꾸준히 발간하는 것은 음식에 담긴 추억뿐만 아니라 음식만큼 사람살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 나타난 음식은 역사가 길고,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요즘 우리가 한 끼 식사로 즐거이 먹는 샌드위치는 언제 그 모습을 드러냈을까?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바로 한국근대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이광수의 「무정」에 ‘낯선 음식’으로 첫 선을 보인다. 장편소설 「무정」은 아직도 연구가 그치지 않을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인데, 나는 이 작품에 나타난 음식에 많은 관심이 간다. 대표적인 것이 ‘샌드위치’이다. 이 작품에 처음 얼굴을 내민 샌드위치는 여주인공 박영채가 ‘사랑하는’ (또는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남성을 위해 지켜온 순결을 잃고 자살을 하러 떠나는 길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박영채에게 앞 자리에 앉은 낯선 여성은 관심을 보이며 우는 이유를 묻는다. 그녀는 박영채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애정관을 피력하여 죽음의 길에 나선 박영채를 구원한다.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서로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내는 음식이 바로 샌드위치이다. 처음 샌드위치를 건네받은 박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를 낀’ 이 음식의 이름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 망설인다. 이렇게 한국 소설에 처음 나타난 샌드위치의 모습은 새로운 음식문화에 대한 경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음식이 인간과의 친밀감을 드러내는 소중한 매개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때이든 사람들의 첫 만남은 어색할 수 있고, 때로는 인간 사이가 각박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밥 한술, 차 한 잔이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도 낯선 인물들이 친밀감을 드러내며, 더 나아가 애틋한 연정을 보여주는 질료로 음식이 등장한다. 눈보라 치는 겨울 벌판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두 명의 노동자와 술집 작부 한명. 처음 그들 사이에는 경계심과 배타적 태도 때문에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낡은 빈 집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하며 서로 간의 경계심을 풀어 나간다. 눈이 쌓인 벌판에서 여주인공은 발을 삐고, 노영달은 그녀를 업고 기차역으로 가게 된다. 인상 깊은 대목은 기차역에서 젊은 노동자 노영달이 백화와 작별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양말 속에 간직한 ‘꼬깃꼬깃’하게 접어 둔 비상금을 꺼내어 ‘삼립빵’과 ‘삶은 계란’을 건네고, 백화는 자신의 본명이 ‘점례’라고 알려준다. 70년대 이별의 장면에 등장한 음식의 모습이다. 

오늘, 이 시간,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들은 앞에 놓여진 음식, 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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