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자보 두고 충돌, 관련 대자보 연달아 게시돼
홍콩 대자보 두고 충돌, 관련 대자보 연달아 게시돼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9.11.24
  • 호수 1504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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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내용 두고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 충돌해 
언쟁에서 폭력 상황으로 이어질 위기 겪어
이후 대자보 릴레이 이어져

지난 14일, 지나가던 학생이 인문대 1층에 설치된 레논 월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 지난 14일, 지나가던 학생이 인문대 1층에 설치된 레논 월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서울캠퍼스 인문대 1층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에 관한 대자보가 연일 게시됐다. 첫날에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과 이들을 비판하는 학생이 충돌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 13일, 인문대 1층에는 2개의 서로 다른 대자보가 게시됐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에서 부착한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대자보와 김지문<인문대 사학과 15> 씨가 게시한 ‘홍콩 민주화 운동과 함께할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모두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비판하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김 씨는 당일 낮 12시 즈음 인문대 행정팀의 승인을 받아 대자보를 게시한 뒤, 오후 1시부터 본격적인 ‘*레논 월’ 만들기를 시작했다. 김 씨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손글씨 한 번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며 학생들에게 레논 월 만들기 참여를 요청했다. 

레논 월 만들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중국인 학생들은 레논 월을 훼손하며 이에 항의했다. 중국인 학생들은 레논 월 위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하나의 중국’ △‘홍콩 독립 절대 반대’ 등의 문구를 덧붙이며 학생들이 레논 월에 ‘홍콩을 지지한다’고 적은 메모지를 가렸다. 인문대 행정팀 관계자에 따르면 대자보가 붙은 직후 중국인 학생들로부터 많은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인 학생 A씨는 “중국인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이에 분노해 중국인 학생 일부가 인문대 1층에 모여 대자보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씨와 그를 돕던 학생들 그리고 중국인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 지난 13일, 인문대에서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이 대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학생 B씨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이 인문대 1층으로 출동할 정도로 큰 충돌이 벌어졌다. 인문대 행정팀 관계자는 “1층에서 진행된 수업에서 ‘소란스럽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일 인문대 1층에서 수업을 들은 익명을 요구한 학생 B씨는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증언했다. B씨는 “소음 외에도 중국인 학생들이 한국인 학생을 때리려고 위협하기도 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인문대 행정팀 관계자는 “소음에 관해서는 인문대 행정팀 직원과 경비원이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교수님의 연구 활동 및 교육 활동과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지했다”며 “다른 표현의 방식으로써 대자보 게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14일 오후부터 중국인 학생들의 의견이 담긴 대자보가 레논 월 옆에 붙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중국인 유학생회는 ‘홍콩 사태에 관한 해명’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 대자보를 통해 중국인 유학생회는 중국인 학생들이 왜 홍콩 민주화 운동에 관한 대자보에 항의하는지 말했다. 해당 대자보는 *일국양제의 원칙을 강조하며 홍콩의 독립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홍콩 독립은 중화 민족의 내부적인 갈등을 격화시킨다’며 홍콩 독립 지지는 중화 민족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인 혹은 단체가 민주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대자보를 찢어 버리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는 말을 통해 대자보 훼손과 충돌의 재발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인 유학생회의 대자보에 이어 다양한 의견의 대자보가 붙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대자보에는 여러 학생이 ‘이에 동의한다’는 내용 메모지를 덧붙여 동조했다. 이에 관한 반박으로 홍콩 시위대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는 대자보도 함께 붙었다. 

이번 대자보 릴레이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C씨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독일 기자를 통해 세계로 전달돼 힘이 된 것처럼 우리 역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홍콩인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D씨 역시 “김 씨의 대자보와 중국인 유학생의 대자보를 모두 읽어봤다”며 “양측의 의견을 모두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이와는 반대로 익명을 요구한 홍콩 출신 유학생 E씨는 “이번 홍콩 시위는 민주화와 송환법 외에도 여러 요구가 겹쳐 있다”며 “인문대 1층에 게시된 대자보만으로 홍콩 시위의 전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 22일, 인문대 1층에 부착된 대부분의 대자보는 인문대 행정팀이 승인한 게시일을 넘겨 철거됐다. 이번 대자보 릴레이 초기에는 일부 중국인 학생들이 대자보를 훼손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학생과 이에 반대하는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앞으로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학생 사회가 되길 바란다.


*레논 월: 1980년대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 운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문구를 손글씨로 적어 붙인 벽을 말한다. 
*일국양제: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라는 뜻으로 중국 내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가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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