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암(癌)살자 석면, 우리는 불안하다
보이지 않는 암(癌)살자 석면, 우리는 불안하다
  • 이예종 기자
  • 승인 2019.11.04
  • 호수 1503
  • 2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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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후 새로운 희망을 담아 건축물이 우후죽순 들어설 때 ‘석면’은 최고의 건축재였다. 석면은 △물 △불 △전기 △화학약품 등에 내성이 있고 값이 저렴한 ‘기적의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석면가루가 △석면폐증 △악성중피종 △폐암 등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임이 알려지며 상황은 급변했다. 한강의 기적이 발암물질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석면의 생산·사용을 금지했고, 환경부는 2012년부터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진 석면과 오롯이 대면하고자 석면 조사를 시행해 ‘석면관리종합정보망(이하 석면정보망)’을 만들었다. 석면정보망에 따르면 건축물 하나에 50㎡ 이상 또는 건축물의 *연 면적 중 1% 이상에 석면재가 사용됐으면 ‘석면 건축물’에 해당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각각 80년과 40년의 역사를 이어온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 역시 석면 문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석면정보망에 따르면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우리 학교의 상징이었던 올림픽체육관의 연 면적 3만1천224㎡ 중 1만2천298㎡, 약 40%의 면적에 석면재가 사용됐다. 석면은 천장재와 벽체, 칸막이, 배관재 등에 사용됐는데, 이 중 천장재로 사용된 석면재는 1만1천728㎡의 면적으로 대부분의 석면이 천장재로 사용됐다. 캠퍼스의 다른 석면 건축물 역시 현황은 비슷하다. 석면재의 대부분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양캠은 모두 2014년에 석면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석면정보망에 등재된 전수조사 결과와 양캠 시설팀의 정보를 종합하면, 양캠 건축물 중에서 1천㎡ 이상의 석면재를 사용한 대규모 석면 건축물은 서울캠 67개 건축물 중 21개, ERICA캠 40개 건축물 중 18개다. 서울캠의 △산학기술관 △신소재공학관 △제1공학관 △제2공학관 △제1학생생활관 △제2학생생활관 등에 석면이 대량 사용됐다. ERICA캠 역시 △건축디자인관 △경상관 △기숙사 △도서관 △언론정보관 등에서 대규모로 석면이 사용됐다. 서울캠 시설팀 자료에 따르면 서울캠 건축물 총 9만4천620㎡의 면적에 석면이 남아 있고, 이는 서울캠 전체 건축물 면적의 22%에 달한다. 한국환경보건학회 이사 한돈희<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사립대에 평균 2만3천144㎡의 면적만큼 석면이 남아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양대의 석면재 잔여량은 상당히 많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석면은 대량, 관리는 소량?
국립대는 석면 해체·철거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반면, 사립대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 교수는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사립대는 법인이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석면을 해체·철거해야 한다”며 “대학 법인이 이를 외면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해체·철거 외에 단순한 관리도 필요하다. 한 교수는 “한양대 양캠은 각각 80년, 40년을 지나며 많은 건축물이 노후돼 훨씬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캠 석면안전관리인 김의환<관리처 시설팀> 과장은 “지난 달 기준 안전하게 해체·철거된 석면재의 양은 1만780㎡로 잔여 석면재의 양은 9만4천620㎡”이라고 밝혔다. ERICA캠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조용준<총무관리처 시설팀> 과장은 “현재까지 철거한 석면재의 양은 대략 전체의 10%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대부분의 석면이 그대로 남아있는 만큼 석면의 위험성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달 18일부터 29일까지 양캠의 해체·철거되지 않은 석면 건축물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고, 우리 학교 석면 관리에 구멍이 뚫려있음을 확인했다. 건축물 중 일부 층의 강의실과 복도를 조사한 결과 모든 건축물의 석면재에서 최소 28개 이상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손상을 발견했다. 출입이 통제돼 조사하지 못한 교수 연구실, 실험실, 강의실 등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많은 석면재가 손상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30일, 신소재공학관 건축물의 석면천장재가 완파돼 있다.
▲ 지난달 30일, 신소재공학관 건축물의 석면천장재가 완파돼 있다.

세계맑은공기연맹 회장 김윤신<의대 의학과> 교수는 “눈에 띌 정도로 파손되고 손상된 부분이 있다면 즉시 보수 조치해야 한다”며 “파손이 작더라도 더 큰 파손으로 이어지고 석면가루가 *비산될 수 있기 때문에 *메움재를 통해 보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공기 흐름만으로도 손상된 석면재에선 석면가루가 비산될 수 있다”며 “노후 건축물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석면가루 같은 발암물질은 극히 적은 양에 노출돼도 개인의 상태에 따라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통상적으로 노출 기준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교수는 “노출 양과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석면가루가 비산되는 환경에 노출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미화원이나 연구자의 경우 오랜 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한 교수는 “이들의 상주 공간에 석면재가 사용되고, 손상이 발생하면 훨씬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석면안전관리인이 한 명인 것도 한계가 있다. 석면안전관리인은 6개월마다 석면재의 손상 및 비산 가능성을 확인하고 기록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김윤신 교수는 “캠퍼스에 있는 건축물이 수십 개가 넘는 상황에서 한 명으로는 관리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석면 해체·철거 과정에서 주변으로 석면가루가 비산되는 것은 큰 문제기 때문에, 전문업체에게 맡기는 동시에 지정된 감리인이 작업을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석면 손상을 주기적으로 파악하고, 철거 작업을 감독하는 과정에서 캠퍼스마다 최소 두 명 이상 석면안전관리인을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서울캠 산학기술관 공사를 위해 석면천장재를 들어낸 모습이다.
▲ 지난달 19일, 서울캠 산학기술관 공사를 위해 석면천장재를 들어낸 모습이다.

지난 9월 16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서울캠 산학기술관에선 에어컨 공사가 진행됐다. 산학기술관은 1층부터 7층까지 복도 천장에 전부 석면재가 사용된 석면 건축물이다. 이 과정에서 천장재를 대규모로 들어낸 것이 밝혀졌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A씨와 교수 B씨는 “에어컨 공사 기간 2~3주 동안 천장은 계속 열려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A씨는 “천장이 석면인줄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건축물에서 석면 천장재가 열려있는 상태로 방치된 것이다. 이에 한 교수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라 석면재 총면적 50㎡ 이상을 뜯어내는 공사를 할 때는 반드시 전문 업체를 통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석면 해체 작업을 하는 경우, 외부로 석면이 비산되지 않도록 석면 해체 작업용 비닐을 사용해 시공 장소를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건축물에 출입할 수 없으며, 외부로 석면가루가 퍼지지 않도록 건축물 내부와 외부의 압력을 맞추는 기계를 설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석면가루가 외부로 비산되지 않았는지 측정해 결과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이에 김 과장은 “시공업체에게 주의를 줬다”며 “에어컨 설치를 위해 건축물 사용을 완전 제한하고 공사하는 것은 예산·공간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산학기술관의 석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손 쓰지 않는, 아니 못 쓰는 이유
많은 노후건축물에서 발생하는 손상을 전부 매일 확인하고 보수하는 것은 인력 부족의 문제에 부딪혀 쉽지 않다. 해체·철거 공사 중에는 건축물 봉쇄로 인한 공간 부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석면 해체·철거를 위한 예산도 부족하다. 조 과장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의 석면재 철거에 2만 원이 든다며, 건축물 하나의 해체 비용은 최소 수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자본의 논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석면가루는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최소 10년이 지나서야 나타난다. 그 누구라도 석면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암살자’ 석면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 


*연 면적: 건축물의 바닥면적을 모두 합친 면적을 말한다.
*비산: 석면가루 등이 공기 중에 흩어진다는 뜻이다.
*메움재: 석면재에 작은 파손이 있는 경우 주로 쓰인다. 파손 부위에 도포해 추가 손상과 석면가루의 비산을 막는 고착제 등을 의미한다.

도움: 김윤신<의대 의학과> 교수
엄효선<성동구청 맑은환경과> 주무관
한돈희<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박용진 기자 joseph2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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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준 2019-11-04 23:31:15
정말 중요한 정보입니다. 많은 학우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