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우리는 나라를 위한 ‘자원’인가
[장산곶매] 우리는 나라를 위한 ‘자원’인가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10.13
  • 호수 1502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종훈<편집국장>

필자는 ‘미필’이다. 23살의 나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다. ‘군알못’인 필자가 지난달 국방부가 내린 ‘신체검사 기준 완화’ 결정에 대해 생각해봤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2021년부터 현역 인력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마디로 2년 뒤부터 군인이 부족해진다는 말이다. 원인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때문이다.  자연히 20대 남자 인구도 줄어든 것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20대 남자 인구는 2017년 35만 명에서 2022년 이후에는 22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군인이 부족하다는 것은 큰 문제다. 국방에 있어서 군인 수급은 가장 기초이자 근본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군인 부족에 대한 해결책을 내놨다. 그 답은 ‘신체검사 기준 완화’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지난 29일 국방부는 신체검사 기준 완화를 통해 군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비만이나 고혈압 같은 신체검사 기준을 완화해 현역 판정 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원래 기준대로라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혹은 가면 안 될 사람이 2021년부터는 현역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 중 하나는 국방부가 내놓은 해결책이 주객전도라는 것이다. 기존 신체검사 기준에 허점이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완화하거나 바꿔야 함이 당연하다. 신체검사 기준이 너무 높아 현역 판정이 충분한데 면제를 받는 경우가 많다거나, 반대로 너무 낮아 군 생활에 부적합한 사람까지 군대에 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스스로 군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기준을 완화한다고 밝히며 무엇이 중요한지 놓쳤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 정책 간 충돌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단계적으로 병역의무 기간을 줄였다. 군마다 다르지만 2~3개월 정도 군 복무 기간을 줄였다. 이 정책은 필연적으로 군인 수감소로 이어진다. 그로부터 1년밖에 지나지 않아 군인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체검사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앞선 정책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또한 두 정책 간 충돌로도 볼 수 있다. 군 복무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면서 현역 판정률을 높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병역의무를 바라보는 군 당국의 태도다. 병역의무 기간을 줄일 당시 병무청은 이미 정책을 결정해두고 나중에 생길 문제는 그때 가서 해결한다는 식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정책에 영향을 받는 수많은 청년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이후 국방부가 신체검사 기준 완화 계획을 밝힐 때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항목의 기준을 완화하면 민원이 많을 것으로 예상해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때도 절차적 정당성이나 의견 수렴보다는 눈앞의 민원이 두려워 이를 회피할 방법만 찾았다. 

두 번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군 당국은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병역의무를 진 사람들을 ‘자원’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단 줄이고 그다음 문제는 그때 가서 해결하자’나 ‘조금씩 기준을 완화해서 비난을 피해 보자’라는 식의 태도는 나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 당국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로 보기 힘들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0.98명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0명대’에 머물렀다. 젊은 층의 인구 감소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바로 학교와 군대다. 꾸준한 저출산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학령인구 감소와 군 인력 부족의 상황에 직면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현재로서 어찌 피할 방법이 없다. 사회 구조 변화로 인해 마주할 여러 문제 중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군 인원 부족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지난 1일은 제71주년 국군의 날이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안보태세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미필인 필자의 눈에 신체검사 기준 완화가 이런 안보태세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