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등단'이 뭐길래?
도대체 '등단'이 뭐길래?
  • 우지훈 기자
  • 승인 2019.10.07
  • 호수 1501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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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등단’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년 출간되는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등 문예지의 신인문학상 △일간지 신춘문예 모음집 등을 통해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간지의 신춘문예와 문예지 주최 신인작가상은 등단제도의 일종으로, 작가로서 경력을 시작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처럼 여겨진다.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빛의 과거」의 은희경 작가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경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는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신인 작가의 등용문, 등단제도
1914년 매일신보에서 시작한 신춘문예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등단제도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등단제도는 신인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면서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 기여했다. 이재복<국문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는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해 전문적인 문사를 배출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시 “예비 작가들은 등단 준비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역량을 갈고 닦을 수 있다”고 밝혔다.

등단제도는 대중과 문학을 매개하는 역할도 했다. 평소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일간지 주최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 문학상 등 수상경력을 이용한 적극적인 홍보로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A씨는 “매년 신춘문예 당선 모음집이나 신인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구매하는 편인데 이 책을 통해 여러 신인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며 “독자 입장에서 등단제도가 새로운 작가들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등단제도, 도마 위에 오르다
등단제도는 작가의 자격을 보증하고 문단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등단제도의 한계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편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2012년 「문화정책논총」 제26집 2호의 등단제도에 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07명 중 53.1%인 110명이 현 등단제도가 ‘문제점이 있지만 인정한다’며 31.6%인 65명이 ‘보완해 시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등단이 작가의 자격이자 기준이 되면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제도에 맞춘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일간지나 문예지의 취향에 맞도록 글을 쓰면서 작가는 개성을 잃고 심사위원의 취향을 체득한다.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등단 학원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 교수는 “시 부문을 예로 들자면 아주 길거나 난해한 작품은 신춘문예에 뽑히기 어려워 작가들 역시 이를 겨냥한 등단용 글쓰기를 하게 된다”며 “사교육과 비슷한 파생기관도 등단제도의 경향성에 바탕을 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등단 여부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판가름할 정도로 그 의미가 비대해진 상황에서 등단제도는 그 자체로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지 못하거나 문예지의 신인 문학상을 받지 못했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문학계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신춘문예라면 일간지에서 작품 홍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당선 작가를 밀어주고, 문예지라면 해당 문예지의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문예지에 게재해주고 서평 및 평론을 써주는 식이다. 이에 따라 등단 절차를 거치지 못했지만, 문학적 내공을 가진 작품은 주류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런 등단제도 중심의 문학계에 관해 이 교수는 “제도화의 한계로 권력 개입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소외되는 사람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유 교수 역시 “단에 오른 사람이 단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 비해 배타적인 우월감을 갖게 되는 시스템”이라 설명했다.

등단제도의 미래는?
등단제도에 대해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일각에서는 발 빠른 대응을 보였다. 민음사는 2015년 공모제를 폐지하고, 한 해 동안 출간된 한국소설 전체를 대상으로 독자 의견을 반영해 선정하는 ‘오늘의 작가상’을 열기 시작했다. 문예지 「21세기 문학」 역시 지난 2017년 신인상을 폐지했다.

|이런 변화는 문학계 스스로 등단제도가 갖는 문제점을 점검해보고, 독자는 그 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독자가 강조되는 최근 경향에 따라 대중성과 괴리될 여지가 있는 소수 심사위원 중심의 등단작이 과거만큼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등단 여부가 앞으로도 중요할 것인지에 대해선 지켜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앞으로의 문학은 작가보다 독자의 지위가 상당히 중요한 시대이기에 등단제도를 통한 제도권 편입 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 교수는 “등단하지 않은 작가라 해서 배척하지 말고, 작품을 내기 시작한 때부터 경력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선 우리와 같은 등단제도가 아니라 출판사의 편집자가 좋은 작가를 발굴해 출판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문학계가 형성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와 독자 모두 제도라는 허울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 그 자체만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긴 역사를 이어 오고 있는 등단제도는 그 순기능으로 수많은 작가를 배출하며 지금의 문단을 형성했다. 하지만 동시에 등단과 비등단이란 구분선을 통해 작가들 사이의 불평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등단제도를 재정비하고,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는 문학계가 되길 기대해본다.

도움: 이재복<국문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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