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 외사랑은 한대신문입니다
[취재일기] 제 외사랑은 한대신문입니다
  • 박용진 기자
  • 승인 2019.10.07
  • 호수 1501
  • 6면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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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사진·미디어부> 정기자

나는 지금, 외사랑을 하고 있다.

외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 사이에서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이다. 쌍방이 아닌 일방통행과 같은 외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슬프면서도 아픈 사랑이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아름답지만 외사랑의 과정엔 맨발로 자갈길을 걷는 것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이 따른다.

그럼 왜 이런 외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언젠가는 나를 바라봐 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에 실릴 기사를 위해 취재를 하고, 레이아웃을 짜는 일련의 과정은 외사랑과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다. 신문사 기자들은 어떤 정보가 학생들에게 유익한 정보일까 고민하며 방학 중 한 달의 기간 동안 회의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획안이 사라지고 다듬어지며 다음 학기에 작성할 기사의 기획안이 완성된다. 

그렇게 완성된 기획안을 바탕으로 한 학기에 총 9번의 신문이 나온다. 신문이 나올 때마다 기자들은 다음번 발간 때는 더 좋은 기사,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기사를 신문에 담자며 이번에 나온 신문에 대해 피드백을 나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금요일, 신문사에서 다시 신문을 만든다.

위 과정을 거쳐 나온 신문들이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외면 받고 있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신문사 기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필자의 단과대에 배치된 신문은 일주일 내내 그 양이 거의 줄지 않는다. 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을 계속 열심히 만들어야 하는 건가’라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어도 나와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신문사로 향한다. 필자가 신문 제작 과정이 외사랑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신문을 외면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 또한 하나의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신문사에 있는 그 누구도 신문을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외사랑처럼 ‘언젠가는 우리 신문을 봐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열심히 신문을 만든다.  

이런 힘든 외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신문사 구성원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우리 기사를 최종 검토해주시는 김태용 주간 교수님과 김하늘 간사님, 모든 기사의 데스킹을 봐야 하는 김종훈 편집국장과 정주엽 부편집국장, 한 부서를 책임지는 김민주 부장과 우지훈 부장, 각부서의 고다경, 노승희, 오수정, 이예종, 전다인, 황수진 정기자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 도움을 주는 이세영 디자인 기자까지 이 글을 통해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대부분의 외사랑은 슬픈 결말을 맺는다. 필자의 외사랑도 그러했다. 포기하면 미련이 남고 계속하면 상처를 받는다. 필자가 앞으로 신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그런 상처의 연속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랑을 쉽게 그만두지는 않으련다. 필자의 외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본다.

*데스킹: 현장 취재기자들의 원고를 고참 기자들이 검토해 다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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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지나 2019-11-08 13:03:35
정말 적절한 비유네요 이해가 딱 갑니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강예쁜 2019-10-07 23:45:58
신문을 외사랑에 비교했다니.. 기사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기자님의 외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한대신문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