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호 특집호 축사] 박형석 한대신문동인회 회장
[1500호 특집호 축사] 박형석 한대신문동인회 회장
  • 박형석<한대신문동인회 회장>
  • 승인 2019.09.23
  • 호수 1500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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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호마다 깃든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

▲ 박형석<한대신문동인회 회장>

빛나는 예지, 힘찬 붓줄기.

인문관 1층의 한편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한대신문사의 한쪽 벽에 걸려있던 편액 속의 이 글귀는 1981년 3월, 한대신문사에 첫발을 내디딘 나에게 한대신문과의 강렬한 첫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1959년, 한양대학교의 종합대학 승격과 발을 맞춰 창간된 한대신문은 올해로 어느덧 창간 60주년을 맞았고, 지령 1500호를 맞이하는 오늘, 대학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한대신문사와 함께 보낸 나로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대신문의 지령 1500호를 한대신문과 함께 청춘을 불살랐던 많은 동인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지령 1500호에 이르기까지 한대신문은 한양대학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발전의 과정을 함께 한 동반자였습니다. 1972년 의대 부속병원 설립과 1979년 반월분교(현 ERICA캠퍼스) 설립, 2002년 한양사이버대 설립, 그리고 2003년 학연산 클러스터사업단 설립에 이르기까지 한대신문은 한양대학교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교내외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도 수차례 겪었고, 그에 따라 학교와 한대신문사 사이에 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길게 보면 한대신문은 한양대학교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해 온 과정을 거쳐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대신문에 몸담고 있었던 시절은 1980년 서울의 봄이 끝나고 제5공화국의 독재 정권이 등장해 한창 사회를 유신 시대로 되돌려 억압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정권은 보도지침을 통해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그런 상황은 대학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매주 화요일에 조판을 해서 수요일 아침에 발간되던 한대신문은 주간교수의 엄격한 기사 검토를 거쳐 인쇄가 되더라도 당시 학교에 상주하고 있던 기관원들의 최종 심의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등굣길의 학생들에게 배포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시절, 이런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서 학생들에게 미처 배부되지 못하고 3만5천 부가 그대로 소각장으로 향했던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승복기념관 개관과 관련한 기자 칼럼을, 또 한 번은 학도호국단 주관의 행당축전에 여러 단과대학이 보이콧을 했다는 기사를 문제 삼아 그런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기자들은 500부에서 1천 부 정도의 신문을 신문사에 감춰놓고 신문이 발간되지 않은 사실이 궁금해서 신문사로 직접 찾아온 학생들에게 몰래 한 부씩 배포하곤 했고, 그런 날이면 신문은 금방 동이 나 학생들이 서로 돌려보느라 너덜너덜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교내 매체로는 한대신문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한대신문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매체의 다양화로 인해 대학신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이 우리 동인들에게 안타까움을 줍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한대신문이 헤쳐 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를 가지고 우리 현역 기자들이 대학 언론의 정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한대신문이 우리 한양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를 갖는 존재라는 사실이 다시금 크게 부각될 날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동인과 함께 우리 한대신문의 지령 1500호를 축하하며 기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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