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피의사실 공표, 정치에 이용돼선 안돼
[사설] 피의사실 공표, 정치에 이용돼선 안돼
  • 한대신문
  • 승인 2019.09.23
  • 호수 150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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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검찰 훈령인 수사공보준칙의 개정을 통해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규제를 협의하기 위함이다. 훈령 개정안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필요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기존 수사공보준칙보다 피의사실 공표 규제에 강제성을 띤다.

형법 제126조에 따르면 피의사실 공표는 엄연히 범죄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범죄 수사에 임하는 자, 이를 감독·보조하는 자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피의사실 공표죄에 저촉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검찰은 브리핑을 통해 수사 내용을 발표하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피의사실을 계속 보도해왔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분석한 결과 지난 11년간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지만 기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수사기관과 언론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훈령 개정과 법의 엄정한 적용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국<법무부> 장관이 취임 후 관련 제도 개혁을 서두르는 행태는 문제가 있다.

먼저 개혁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검찰은 지금 조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훈령 개정에 관한 논의는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 쉽다. 수사 담당자가 피의사실 공표로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조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수사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지난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개할 때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가만히 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제 와서 피의사실 공표를 규제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도 진의를 의심케 한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피의자의 인권보다 정치적 유불리로 접근하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논의는 피의자의 인권 존중과 무죄추정의 원칙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퍼져 피의자가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면 재판을 받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낙인은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후에 피의자에게 혐의가 없음이 밝혀지더라도 언론의 정정보도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피의사실 공표죄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고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피의사실 공표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써 활용돼서는 안 된다. 수사공보준칙이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오로지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개정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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