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디자이너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디자이너
  • 박용진 기자
  • 승인 2019.09.23
  • 호수 1500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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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동<얼킨> 대표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얼킨 아뜰리에'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 대표.

‘버려지는 캔버스가 명품 가방으로 재탄생하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나가는 이성동 패션디자이너. 이 대표는 본교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업사이클링 브랜드 얼킨을 만들었다. 현재 본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 대표의 창업 이야기와 그의 패션 철학 안으로 들어가 보자. 

아이돌을 보고 자란 어린 시절
이 대표의 학창 시절은 젝스키스, HOT, god 등 남자 아이돌 1세대 전성시대였다. 그들의 옷,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등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 됐고 그들을 보고 자란 이 대표 또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이돌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면 일명 ‘날라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먼저 그런 스타일을 제안할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개방적이셨어요”라며 “그러다 보니 당시 유행하던 아이돌 머리도 해보고 옷도 사서 입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처럼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고, 대학은 의류학과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수능 공부에 대해 이 대표는 “억지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의류학과를 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공부다 보니 재밌는 건 아니어도 남들처럼 힘들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의류학과에서 얼킨까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대표는 서울에서 시작된 대학 생활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입생 생활에 대해 이 대표는 “1학년 때 엄청나게 놀았어요”라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공통수업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런 수업들은 소홀히 했지만 본 수업 들어가서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열심히 했어요”라고 당시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자신이 즐거워하는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던 이 대표는 △강남 신진디자이너 콘테스트최우수상 △두타 벤처 디자이너 콘퍼런스 은상 △졸업 전시 1등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쌓았다. 이렇듯 꽃길만 걸어온 이 대표의 디자이너 인생에도 군대라는 난관이 등장한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고갈됐고 패션 대회에서도 이전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 대표는 “군대 갔다 오니까 패션 감각이 확 떨어져 있더라고요”라며 “패션에는 소재와 유행이라는 게 있는데 군복 이외의 다른 옷들은 볼 수가 없으니까 제대 후에 그 감각을 다시 찾으려고 회사에 들어가 1년 정도 일을 배우는 등 많은 노력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얼킨 아틀리에’에서 이 대표는 고객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의류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펀딩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샘플을 만들어 패션 전시회에 참여한다. 이 대표는 “그 전시회가 여러 브랜드가 모여 고객들에게 평가를 받는 자리였는데 전시회 첫날 저희 브랜드 명함이 다 없어졌어요”라며 “그래서 본격적으로 내 사업을 시작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2004년 ‘얼킨’을 만들었어요”라고 전했다.

하지만 얼킨이 이 대표의 첫 창업은 아니었다. 얼킨을 만들기 전, 두타 벤처 디자이너 콘퍼런스 수상으로 주어진 매장에서 처음 창업을 했다. 이 대표는 “당시 저는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가서 같이 졸업을 앞두고 있던 형들에게 사업을 맡겼는데 금방 망했어요”라며 “그 실패의 경험을 통해 사업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얼킨을 더 구체적으로 준비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2004년 생긴 얼킨은 업사이클링 분야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2004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업사이클링 분야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업사이클링을 생각하고 얼킨이란 브랜드를 창업한 건 아니에요”라며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졸업 전시에 갔다가 버려지는 캔버스를 보고 이걸 활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라고 밝혔다. 

그렇게 시작한 얼킨은 한국 업사이클링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대표가 사업을 시작했던 2004년만 하더라도 시장 규모는 10억 안팎이었지만 지금은 100억 원대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시장 규모가 그렇게 작은 줄 몰랐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라며 “만약 시장규모를 알았더라면 쉽게 이 분야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경영자로서의 이성동
이 대표는 얼킨을 시작한 이래로 디자이너의 역할과 경영자의 역할을 같이 수행하고 있다. 그런 그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얼킨을 사회적 벤처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사회적 벤처 기업의 대표로서 그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이 대표가 얼킨 설립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은 작품을 제공한 작가들과 수익의 일부를 나누고 이들의 전시회를 여는 일이다. 이 대표는 “사회적 벤처 기업의 가장 큰 자격 요건 중 하나가 어떤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지라고 생각해요”라며 “특히 저희처럼 예술 분야의 사회적 벤처 기업은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가 없어요”라며 작가들을 지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최근 스트리밍 웨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스트리밍 웨어란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것처럼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면 매달 1벌의 옷을 받는 사업이다. 이처럼 이 대표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사실 디자이너로서 개인적인 자아실현은 어느 정도 한것 같아요”라며 “이제는 한 사회적 벤처 기업의 대표로서 어떤 성과를 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향후 얼킨의 목표를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회적 벤처 기업으로 거듭나는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새로운 사업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준비를마친 이 대표의 얼킨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항상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얼킨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이 대표. 얼킨이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되는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업사이클링: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사진 노승희 기자 seunghi070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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