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자리에서 더 빛나는 감독 정정용
감독자리에서 더 빛나는 감독 정정용
  • 박용진 기자
  • 승인 2019.09.08
  • 호수 1499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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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U-20 청소년 대표팀> 감독

▲ 월드컵 이후 짧은 휴식을 가진 정 감독은 목포 축구센터로 돌아와 U-20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중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해설자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언제쯤 다시 올까. 지난여름 U-20 월드컵 준우승은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중심에는 지장(智將)과 덕장(德將)의 면을 동시에 갖춘 정정용 감독이 있었다. 본교 대학원에서 스포츠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빵과 우유로 시작된 축구인생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정 감독에게 빵과 우유를 준다는 축구부 감독의 말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정 감독은 “당시만 해도 먹을게 워낙 귀해서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축구를 시작했어요”라며 “비록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빵과 우유 때문이지만 계속하다 보니 축구가 재밌어 졌어요”라고 말했다.

공격수 포지션으로 축구를 시작한 정 감독은 대학교 재학 당시 중앙수비수로 자리를 옮긴다. 정 감독은 “공격수라고 하면 남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게 빠르거나 골을 잘 넣는다던가 무언가 특징이 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런게 없었어요”라며 “감독님도 수비수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셨고 그렇게 포지션을 바꾸게 됐어요”라고 회상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정 감독은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프로 생활 시작 5년만인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정 감독은 은퇴를 한다. 정 감독은 “당시 계속해서 잔부상이 생겼어요”라며 “회복이 가능한 부상이었다면 계속 선수 생활을 했을 텐데 의사가 수비수보고 헤딩을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안될 거 포기하자 생각하고 축구를 그만뒀어요”라고 회상 했다. 10년 넘게 해온 선수 생활 중 너무 빨리 찾아온 은퇴로 인해 아쉬울 법도 했지만 정 감독은 “시원섭섭했고 그 당시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지도자란 꿈을 갖고 날아간 브라질
은퇴와 동시에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을 것 같지만 정 감독은 은퇴 이후 축구와는 거리가 먼 다른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 감독은 “생리학 분야의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라며 “교수가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라는 꿈을 위해 유학을 준비하던 당시 이랜드 푸마 팀에서 정 감독에게 선수 겸 코치를 제안했고 그렇게 축구 지도자로서 정 감독의 지도자 경력이 시작된다. 정 감독은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랜드 팀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어요”라며 “지도자가 돼보니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브라질 축구 유학을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1년 6개월간의 브라질 유학 생활은 정 감독의 지도자 인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 시간이었다. 정 감독은 “당시 팀에서 선수로 뛰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라며 “언제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해보겠나 싶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아서 선수 생활을 다시 했어요”라고 말했다. 수직관계가 특히 확실한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 생활을 했던 정 감독에게는 선후배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문화는 어색하기만 했다. 정 감독은 “선수들끼리 서로 욕하고 그러면서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했어요”라며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정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서 필요한 태도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 감독은 “내가 선수 생활 할 당시만 해도 지도자가 선수를 칭찬하는 문화가 없었어요”라며 “근데 브라질에서는 선수들과 코치가 대화도 많이 하고 코치가 칭찬도 많이 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부분은 지도자가 되면 나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의 브라질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정 감독은 2006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가 된다.

▲ U-20 월드컵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지만 월드컵 이전부터 축구계에서는 연령별 유소년 국가대표팀을 거치면서 잔뼈가 굵었던 정 감독이다

U-20 월드컵 기적을 연출하다
2006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가 되면서 여러 연령별 대표팀 감독직을 거친 정 감독은 2016년 안익수 감독의 감독대행으로 U-20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후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언론에서 정식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정 감독은 본래의 자리가 있다며 U-20 대표팀 감독 자리를 고사한다. 이후 신태용 감독의 계약 만료와 故이광종 감독의 갑작스런 별세로 다시 돌아와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게 된다.

월드컵을 앞둘 때만 해도 U-20 축구 국가대표팀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U-20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펼쳐진 U-19 AFC 챔피언십에서도 아쉬운 경기력 때문에 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았고 월드컵 조 추첨에서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한 조에 묶이며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매 경기 변칙적인 전술로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냈다. 정 감독은 “당연히 준우승 정도의 성적을 예상하고 월드컵에 참가한 건 아니다”라며 “월드컵이라는 무대 자체가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월드컵 이후 정 감독의 전술 노트가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 전술 노트에 대해 정 감독은 “대표팀에 모인 선수들은 한 팀에서 훈련하던 게 아니라 각자의 훈련 방식이 다 달라서 뭉치기가 쉽지 않아요”라며 “그래서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기 위해서 이 전술 책을 만들어서 선수들에게 나눠 줬어요. 감독은 말이 길면 안 되거든요”라고 전술 노트가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꿈꾸다
월드컵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한 정 감독은 다시 U-20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와 2021년 있을 U-20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준우승과 함께 높아진 대중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부담감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감독직을 떠나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이번 월드컵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기 쉽지 않으니까요”라며 “근데 제가 떠나고 나면 새로운 팀이 구성이 될 거고 팀 철학과 플레이 스타일 또한 다 바뀌게 돼요. 그러다 보니 부담스러워도 계속 이 자리에 남아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또한 정 감독은 “제가 언제 이 자리를 떠날지는 모르지만, 한국 축구에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떠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담감을 안고 있는 정 감독이지만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독이든 성배를 받아든 정 감독. 그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앞으로의 한국 축구가 더욱 기대되게 만드는 그의 한마디였다. 화려하지 않은 선수경력에도 어린 선수들을 포용하는 덕장의 면모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전술로 지장의 모습까지 보여준 정 감독이 있어 한국 축구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된다. 

▲ 도전은 해야 하고 그러려면 한 단계 더 뛰어 올라야 할 것 같고. 도전을 통한 도약이 저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사진 김종훈 기자 usuallys18@hanyang.ac.kr
도움: 노승희 기자 seunghi070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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