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이 하나 뿐인 고장
[칼럼] 신호등이 하나 뿐인 고장
  • 박장원<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홍보팀장
  • 승인 2019.09.02
  • 호수 149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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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원<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홍보팀장

고장을 전부 통틀어 빨간색, 초록색 신호등이 단 하나뿐인 동네가 있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대한민국의 일이다. 백두대간 끝자락에 걸쳐있는 군(郡)인데, 인구는 1만7천 명이다. 서울의 한 동(洞)보다도 적은 인구가 사는 곳이다 보니, 지나다니는 차량도 많이 없고 보행자도 그리 많지 않아 서로서로 잘 피해 다니면 신호등 없이도 교통사고나 정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는 꽤 오래됐다. 신라 초기부터 부락이 형성됐다는 기록이 있으니 못 잡아도 천년은 넘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셈이다. 1970년대까지는 그래도 인구 7만 명 수준은 유지했는데,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데다가 저출산과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은 탓에 지금은 소멸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지방소멸’, 마쓰다 히로야가 쓴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유래했다. 내 고향,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이 없어진다는 예측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없어질 위기에 처한 시·군이 80여 곳이나 된다.

‘나는 도시에서 쭉 살고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티는 안 내도 ‘남의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망가져 폐가 혹은 흉가가 된다. 사람이 떠나가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미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방치되는 지역이 늘면 늘수록 대도시 집중화는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럼 고도로 집중된 대도시는 어떨까. 환경오염, 만원 버스, 교통정체, 폭등하는 주거비, 숨 막히는 미세먼지, 사건사고 등으로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게 되고, 결국 도시민의 안전과 위생, 편의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올라간다. 

2019년 6월 현재 수도권 인구 집중도 49.9%, 국토의 12%에 불과한 땅에 이렇게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렇게 가다간 지역의 미래도, 서울의 경쟁력도 모두 다 잃게 된다. 무엇보다 당장 우리 개개인의 삶이 피곤하고 피폐해질 수도 있다.

대다수의 서구 선진국들은 수도권 외에 지역의 강력한 경제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의 경제규모는 5위권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파리 중심을 극복하고 니스, 리옹, 스트라스부르 등을 성장시켰다. 일본은 도쿄권에 필적하는 간사이권을 구축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레드오션의 수도권을 떠나 지방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얼마든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캠핑클럽, 도시어부, 삼시세끼, 섬총사…. 우리가 즐겨 소비하는 콘텐츠의 적지 않은 수가 그 배경을 비수도권 지역으로 둔다. 공휴일과 휴가철, 명절에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도로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역의 사람들, 문화와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는 웃고, 즐기고, 쉼을 누린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자산을 이제는 소중하게 꿰어서 보배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서두에 언급한 고장이 어딘지 궁금한가. 신호등이 하나뿐인 지역. 검색해보자.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매운 고추로 유명한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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