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의 르네상스, 그 발자취를 돌아보다
한국 SF의 르네상스, 그 발자취를 돌아보다
  • 정주엽 기자
  • 승인 2019.09.02
  • 호수 149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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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의 화양연화가 온 걸까. 지난 6월 김보영 작가가 한국 SF 작가로는 최초로 미국의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에 소설 3권의 판권을 수출했다. 한국계 SF 작가 이윤하는 한국적인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으로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 후보에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올랐다. 이런 흐름과 함께 국내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김초엽,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국내에서도 SF가 높은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이렇듯 주목 받는 한국 SF지만 과거엔 아동이나 마니아층만이 즐기는 소수 장르라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SF 평론가로 활동 중인 이지용<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한국에 처음으로 SF가 들어온 것은 1907년 「태극학보」에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를 번안해 연재했던 「해저여행기담」이라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이후 일제강점기에 국문 출판물 전체가 침체되면서 많은 작품이 소개되지는 못했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최초의 창작 작품인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가 1929년 발표되며 한국 SF의 첫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난 이후 60~70년대 한국 SF는 아동문학 부문에서 활발하게 창작됐다. 이 시기,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 한낙원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어린이」나 「새벗」과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도 꾸준히 SF 작품이 소개됐다.

그 후 한국 SF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맞이한 시점은 PC통신이 시작된 90년대다. 이 교수는 “이전까지 SF는 아동용 콘텐츠 혹은 상상력을 위한 콘텐츠 정도의 의미만을 지녔다”며 “PC통신을 통해 팬덤이 형성됐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이 시기 PC통신에서 활동했던 동호회의 구성원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SF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한국 SF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듀나 작가도 바로 이 시기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대부터 SF의 활동 반경은 웹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웹진 등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꾸준히 누적됐다”며 “2015년 이후 작품을 연재할 지면이 확대되고 이를 바탕으로 역량 있는 신인 작가들이 대거 등장해 한국 SF의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 SF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에 개방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며 SF 서사에 대한 관심 역시 부양했다”며 “동시에 외국 출판사와의 교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 교수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나 한국SF협회와 같은 기관 역시 힘을 모으면서 대내외적으로 한국 SF를 알리고자 하는 작업이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 작가들의 역량, 이를 뒷받침하는 기관의 노력이 합쳐져 한국 SF의 역량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SF가 현실에 작은 균열을 내고 여러 사고 실험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줄 장르로 성장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의 SF가 그리는 낭만적 이야기를 전세계 독자들이 널리 읽을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도움: 이지용<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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