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만발하는 호기심의 소유자, 임춘화
꽃처럼 만발하는 호기심의 소유자, 임춘화
  • 노승희 기자
  • 승인 2019.09.02
  • 호수 1498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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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화<아이디얼 가든> 대표

궁금한 것이라면 참지 못하고 배우고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타칭 ‘호기심 소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그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일까.1세대 정원디자이너로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정원디자인계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임춘화<아이디얼 가든> 대표. 그녀는 본교 공학대학원 조경생태복원전공 겸임교수를 하기도 했었다. 꿈에서도 정원을 거닐며 설계를 고민한다는 그녀의 정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돋보인다. 본인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임 대표가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함께 들어보자.
 

정원은 아마 운명
임 대표는 정원과 식물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시골에 살았던 임 대표의 주변은 온통 식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임 대표가 어릴 때는 산림녹화 사업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산림녹화란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고 보호해 초목이 무성해지도록 하는 사업이다. 자연스럽게 임 대표는 플라타너스 나무, 사시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들을 접할 일이 많았다. 그녀는 해마다 봄이면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식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임 대표는 어릴 적부터 마당에 꽃을 심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옛날 시골집의 마당은 타작도 하고 잔치도 해야 하는 다용도 장소였다. 때문에 마당에 꽃을 심으면 그녀의 부모님께 다시 뽑히기 일쑤였지만 임 대표는 굴하지 않았다. “시골집 마당 구석에 상사화라는 꽃을 심었어요. 당시 10살이었는데 지금도 가보면 꽃이 펴요.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꽃이 필 줄 몰랐는데, 아직도 피고 있는 그 꽃을 볼 때마다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정원디자인과의 첫 만남
임 대표는 결혼 후, 가족 문제로 인해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임 대표의 영국행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뽑으라고 하면 영국에 있던 4년이에요. 정원에 관심이 많던 제가 예쁘고 정갈한 영국의 거리를 걸을 때면 너무 행복했어요.”

영국에 가기 전 임 대표의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그녀의 마당은 언제나 꽃이 만발했었다. 하지만 마당에 위치한 삭막한 회색의 시멘트벽과 화려한 꽃이 이질적이라 느꼈던 임 대표는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언제나 고민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을 옮겨 심어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영국에 제 고민을 해소해주는 수업이 있더라고요.” 그 수업을 들을 당시에만 해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과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재밌는 수업 정도로만 생각했다. 임 대표는 그녀의 집 마당을 가꾸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들었을 뿐 정원디자이너를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자기 정원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임 대표. 독수리 타법으로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타이핑만 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행복했고 보람찬 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정원디자인이 그녀의 운명이었던 걸까. 임 대표가 한국에 돌아올 시기에 ‘타샤튜더’의 다큐멘터리가 한국에 방영됐다. 타샤튜더는 미국의 동화 작가이면서, 영국에 땅을 사서 맨발로 정원을 가꾸며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는 영국식 정원에 대한 로망과 관심이 매우 커졌다. 영국에서 정원디자인을 배우고 왔다는 임 대표에게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임 대표는 영국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지식을 나누기 시작하며 정원디자이너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제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니까 식물원을 조성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꽃을 심는 전문가를 찾고 있었죠. 그렇게 제 첫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에 입소문을 타고 그녀는 여러 정원의 디자인 문의를 받게 됐다. 더불어 책도 출판하고 방송에도 나가면서 정원디자인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찾아왔다.

1세대 정원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정원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정원의 배치와 형태를 디자인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정원디자이너, 조경사, 정원사 등 유사한 이름의 직업이 많아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원디자이너는 작은 정원을 설계하는 사람, 조경사는 큰 정원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왜곡된 개념이라고 임 대표는 설명한다. 결국 기본적인 기술과 미적인 철학을 사용하는 직업이고 작은 디테일의 차이만이 있을 뿐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누구도 명함에 자신이 정원디자이너라고 쓰지 않던 시절, 임 대표가 처음 정원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명함을 건네면 사람들이 ‘그게 뭐 하는 직업이에요?’라고 물었어요. 사실 그 질문을 6년 정도 받았어요. 생각해보면 내 직업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제 커리어의 절반을 보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임 대표는 그 과정이 선구자의 숙명이라 여긴다. 본인의 뒤를 이어 정원디자이너가 될 사람들을 위한 토양을 일굴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은 의미 있었다.

임 대표는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작품으로 첫 작품인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를 꼽았다. 허브빌리지는 임 대표에게는 마치 첫사랑과도 같았다 이야기한다. “허브빌리지를 설계하면서 늘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었어요.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였죠.”

‘아이디얼 가든’이라는 회사를 세운 후 그녀는 정원디자인과 더불어 학교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학생들이 정원디자이너에 대한 확고한 꿈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시킨다. “정원디자인이 재밌고 오랫동안 하겠다는 확신이 없으면 후회를 많이 하더라고요. 젊을 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이처럼 임 대표는 정원디자인이 왜 하고 싶은지,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녀는 20대를 보내며 안개 속에 있는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말한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일단 깊이 공부하세요. 그 분야의 디테일이 보일 거예요.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말고 처음 해보는 일에도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녀는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청년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임 대표는 본인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길 원한다. 그녀의 브랜드가 우리나라 정원디자인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길 기대해본다.

▲ 나중을 걱정하기보다 일단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어요. 이런 걸 ‘무대뽀’ 정신이라고 하나요.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어요.

사진 박용진 기자 joseph2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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