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백남준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백남준을 만날 수 있을까?
  • 우지훈 기자
  • 승인 2019.06.02
  • 호수 149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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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가장 선구적인 우리나라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기술과 예술을 혼합시킨 그는 생활 속 물건들을 작품에 그대로 이용한 오브제 예술을 선보였다. 그는 TV와 비디오 등 미디어 매체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서울캠퍼스 백남학술정보관 1층 로비에서도 그의 작품 「TV 첼로」를 만날 수 있다. 「TV 첼로」는 6대의 모니터를 첼로 모양으로 연결한 작품으로, 기술을 통해 음악을 시각화하려 했던 그의 의도가 담겨있다.

▲ 우리 학교 서울캠 백남학술정보관 1층에 전시된 「TV 첼로」의 모습이다.
▲ 우리 학교 서울캠 백남학술정보관 1층에 전시된 「TV 첼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백남준 작품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디오아트로 대표되는 백남준 작품의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과 함께 제작된 「다다익선」의 경우 지난해 2월부터 가동을 멈췄다. 먼지로 인해 스파크가 발생해 폭발 위험이 있고, 누전으로 작동을 멈춘 모니터를 교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설치된 「TV 첼로」 역시 제대로 된 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언제 가동을 중지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백남준 작품의 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다다익선」이 가동을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모니터 노후화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전시를 중단했다. 다행히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이었기에 논의를 거쳐 모니터 전량을 교체했다. 이후 여러 차례 모니터가 고장 나 작동을 멈추곤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때마다 모니터를 교체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2018년, 작품의 창작자가 살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에 사용된 모니터 모델이 단종돼 국립현대미술관은 더 이상 기존 방식대로 작품을 보수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2월부터 「다다익선」 전시를 중지하고 향후 작품 관리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섣불리 최신식 모니터로 바꾸기엔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으로서 원본 그 자체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도 작품 관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작품 제작 당시 모니터는 브라운관인데, 이를 최신식인 LCD나 LED 모니터로 교체할 경우 당대 미디어를 대표하는 브라운관의 볼륨감과 백남준만의 특색이 사라질 수 있다. 이원곤<단국대 미술학부> 교수는 “「다다익선」의 브라운관에는 1980년대의 향수가 담겨있다”며 “최신식 모니터로 바꿀 경우 「다다익선」 속 시대적 배경이 사라져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교수는 “현재로선 브라운관을 여전히 생산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입해 정비하는 수밖에 없다”며 “하루 몇 시간만 가동해 전시하거나 영상물로 남겨 작품을 기억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이 가동을 중지한 모습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이 가동을 중지한 모습이다.

작품 관리를 위한 노력
백남준의 작품과 같은 미디어아트 관리 문제는 비단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회화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가 활용되는 현대미술의 특성상 전 세계 미술계가 미술품 보존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오고 있다. 특히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가변매체 네트워크 보존전략’을 세워 △모방 △보존 △재해석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미술품을 보존해오고 있으며, 이 방법으로 백남준 작품을 관리 및 전시한 바 있다.

먼저 ‘모방’ 방식은 작품 원본과 다른 매체를 사용해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다다익선」 브라운관 모니터를 최신식 LCD 혹은 LED 모니터로 교체할 수 있다. 김겸<김겸미술품보존사무소> 미술작품복원가는 “백남준 작가가 생전 작품 부품 교체에 관해 ‘알아서 해라’라는 말을 한 바 있다”며 “백남준은 이미지 전달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했기에 보존을 위해 부품을 교체하는 것에 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진 않았다”고 말했다.

‘보존’ 방식은 작품에 사용된 매체와 동일한 모델이나 여분의 장치를 보관하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다익선」의 고장 난 모니터를 교체하던 때 사용됐던 방법으로, 작품이 원본 그대로 잘 유지될 수 있다. 김 미술작품복원가는 “백남준 작가가 부품 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공유하는 미술품으로서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를 무시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재해석’ 방식은 작품의 크기나 형태를 재구성해 새로운 장소나 매체의 수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백남준이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의 경우, 화질과 색감 조정을 거쳐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에 저장돼 있다.

이처럼 백남준의 작품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접근법이 채택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술 현장에서는 백남준의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한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매체를 불문하는 현대미술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 미술작품복원가는 “현대미술은 다양한 형식을 표방해 미술품 하나를 두고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논의하게 한다”며 “사람들은 생각을 모으고 토론하면서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을 훈련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 학교에 설치된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는 것도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묘미이지 않을까.

도움: 이원곤<단국대 미술학부> 교수
김겸<김겸미술품보존사무소> 미술작품복원가
사진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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