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한 발 일찍, 한 발 더
남들보다 한 발 일찍, 한 발 더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9.05.26
  • 호수 149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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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철<의대 의학과> 교수

우리 대학은 ‘백남석학상’을 지정해 교육·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인 학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올해 백남석학상은 배상철<의대 의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류마티즘 질환 치료와 진단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개인 연구뿐만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공동연구를 이끌며 류마티즘 질환 치료에서 기존과는 다른 치료 방법을 고안했다. 이렇게 성과를 내며 인정받고 있는 배 교수지만, 그 뒤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전공의 수련 동안 자정 전에는 퇴근하지 못하는 생활은 당연했고, 수련이 끝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개인 시간은 갖지 못했다. 지난 35년간의 의사, 교수 그리고 학자로서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배 교수의 모습이다.

‘가지 않은 길’에 끌리다
류마티즘 질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배 교수지만, 그가 대학을 다니던 때만 해도 류마티즘 분야는 국내에선 황무지에 가까웠다. 당연히 해당 전공도 없었다. 배 교수가 군 복무를 마친 1990년쯤에야 류마티스내과가 생기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당초 내과 중 심장내과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류마티스내과에 가기로 한다. 이유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류마티스내과는 새로 생겼기 때문에 다른 전공에 비해 개척해나갈 분야가 상당히 많았어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평소 좋아했는데, 류마티스내과가 딱 그런 길이었죠.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3년부터 교수로 일하던 중 그는 임상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당시 임상연구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체계적이지 않았다. 해외로의 연수를 생각한 배 교수는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던 중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미국 하버드 대학의 메튜 리앙 교수를 알게 된다.

면접에서 그와 만난 리앙 교수는 그에게 연수와 함께 ‘공중보건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제안했다. 임상연구를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미국 대학원 진학 시험인 GRE와 토플 시험을 치러야 했다. 연수 날짜를 맞추기 위해 1년 안에 그 두 시험을 모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GRE와 토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장소가 아주 적었다. 당연히 볼 수 있는 인원도 제한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치르고 좋은 성적을 거둬 다행히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됐다. 

어찌어찌 미국에 도착했지만 병원 연수와 대학원 수업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병원 업무에 더해 대학원의 수업과 과제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면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의료 윤리학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의료 윤리학은 어려운 표현이 너무 많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죠. 미국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제게는 사전이 꼭 필요했어요. 주로 시험이 월요일에 몰려 있어서 주말에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1인 4역 소화해내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배 교수는 2005년부터 올해 2월까지 류마티스병원장을 역임했다. 병원장이 된 것은 그의 삶의 큰 변곡점이 됐다. 기존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그리고 류마티즘 질환을 연구하는 학자의 세 가지 역할을 했다면 여기에 병원장으로서의 행정 업무까지 더해졌다. 

병원장이 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 병원이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을 다했다. “처음 류마티스병원이 생겼을 때는 선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병원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그쳐서는 안 돼요. 그에 걸맞은 연구 성과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병원이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하려면 진료·연구·행정 삼박자를 잘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의사로서 배 교수가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지사지’와 ‘진인사대천명’ 두 가지다. “병원에 온 환자는 절실한 상황이잖아요. 류마티스 질환이라고 하면 중환이 없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류마티스 질환 중 하나인 ‘루푸스’의 경우 생사를 오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실제로 불편한 환자의 입장이 돼 보려고 노력하고 환자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려고 해요. 의사로서 후회 없는 치료를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죠.” 

교수로서는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배 교수다. 그는 후학들을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데에 신경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자가 사회에 나가 제 역할을 다할 때다. “제자들이 여러 분야로 진출하는데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는 교수가 되어 저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후배들이 제대로 된 길을 가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낍니다.” 

▲ 교수가 된 지 오래지만, 그는 여전히 교수인 동시에 여전히 학생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박사를 마치고 교수가 되면 다 배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교수가 되고 배워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의사로서 소명을 다한 35년
35년간 쉼 없이 의사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그는 늘 소명 의식을 가졌다. 배 교수는 의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직업’이 아닌, 책임감을 느끼고 환자를 대하는 ‘소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철학에는 미국에서 만난 리앙 교수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해야 하는지도 많이 배웠어요. 소명에 대해서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은사인 리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죠.”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배 교수는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앞으로 좋은 후학, 제자들이 성장해 병원을 발전시키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한 건데 어디서 뭘 하든지,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저보다 나은 후배, 동료, 교수들이 많이 나타나서 우리 병원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법명은 ‘보관’이다. 넓을 보와 볼 관이 이어져 넓게 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배 교수는 “학생들에게 늘 세상은 넓고 무한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삶이 무한한 도전의 연속이었기에 그의 말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 그리고 지금의 류마티스병원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 이예종 수습기자 prodigy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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