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법망 사이로 빠져나가는 디지털 성범죄자
허술한 법망 사이로 빠져나가는 디지털 성범죄자
  • 정예원 기자
  • 승인 2019.05.26
  • 호수 1496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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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법 촬영물로 인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영화 「걸캅스」가 개봉했다. 영화에는 불법 촬영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여성이 여럿 등장한다. 이는 영화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8년에 조사한 ‘온라인 성폭력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불법 촬영 피해자 342명 중 111명이 자살을 생각했었고,실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14명이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를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의 고통을 주는 악랄한 범죄 행위다. 

디지털 성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올해 큰 이슈가 된 정준영과 승리를 필두로 한 ‘단톡방 불법 촬영물 공유 사건’과 ‘김학의 별장 성폭행 동영상 협박 사건’도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이 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우리나라 만 20~59세 모바일메신저 이용자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 관련 시민 경험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메신저 이용자 중 단체채팅방에서 불법으로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받거나 유포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9.4%를 차지했다. 누구든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신체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성폭행과 동일하다. 그러나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는 ‘유포’라는 특수성으로 삭제가 어려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차이가 있다. 피해 자체가 재생산되며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법의 공백 조속히 메꿔져야 
이동통신기기와 온라인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성범죄는 변형카메라를 이용해 불법 촬영을 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불법 촬영물이 걷잡을 수 없이 유포되는 등 다양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에 의한 범죄 발달 속도를 법이 미처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효린<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대표는 “유포 협박은 성폭력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며 “커뮤니티 등에서 발생하는 성적인 명예훼손, 모욕, 성적인 사이버 불링들 대부분이 성폭력 처벌법이 아닌 명예훼손 등으로 처리된다”고 밝혔다. 

이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 받는 것이다. 이 때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보호 지원이 불가능하고, 가해자에게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부과가 불가하다는 법적인 한계가 발생한다.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가 보호하는 법익은 ‘불특정 다수가 원하지 않는 음란물에 접하지 않을 자유’이다. 김현아<법무법인 GL> 변호사는 “일부 디지털 성범죄를 성폭력 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피해자의 피해감정이나 일반인의 상식 및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고 있는 성폭력처벌법 제 14조는 지난해 12월 개정됐다. 불법 촬영이나 유포행위가 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법정형이 상향됐다. 하지만 여전히 처벌이 미약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김 변호사는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된다”며 “타 법률과의 균형을 고려할 때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죄는 대화나 개인 식별 정보를 능가하는 영상물의 문제이고 성폭력 범죄라는 점이 감안돼 법정형이 산정되고, 엄격히 처벌 돼야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실제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많은 만큼 형량 강화가 실효성 있게 실제 재판 과정에서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의 공소시효 기산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기기를 매개로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기에 본인이 몰래 찍힌 것, 촬영물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 인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특성에 맞게 피해자가 사건을 인지한 날로부터 기산점을 개정하는 등의 공소시효 기산점 특별 조항에 관한 법 개정이 재고돼야 한다. 

불법 촬영물을 보유하는 게 드러났을 경우 강제적인 삭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불법 촬영물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언제든 유포될 위험이 있음을 의미하지만 강제 삭제조치와 더불어 처벌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아동청소년음란물의 경우 가지고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한 것에 반해 피해 촬영물 소지의 경우 왜 처벌 받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의 불법 촬영물 촬영 및 유포는 볼펜, 안경, 물병 등 초소형 변형카메라에 의해 촬영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범죄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관련법이 부재한 실정이다. 김 변호사는 “국내에 유입되거나 판매되는 변형카메라의 종류나 수량, 사업규모 등 기본적인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 사이에 변형카메라로 인한 수많은 불법 촬영물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에 인식 개선 수반돼야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을 돌아보고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 행위’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인식’이 가장 많은 응답을 기록했다. ‘약한 처벌’,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부당한 대우를 받기 때문’  등이 뒤를 이었다. 디지털 성범죄가 엄연한 성범죄라는 성인지 감수성과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이다. 김 변호사는 “불법 촬영물을 재유포하는 행위는 2차 가해가 아니라 직접적인 가해이며 성폭력 범죄라는 것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의 피의자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있다. 그사이 피해자만 더 고통 받을 뿐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신속한 여러 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 유형 모두 엄연한 성범죄이고 불법 촬영물을 보는 행위 또한 가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가 제대로 벌을 받고, 피해자의 눈물이 하루 빨리 그치기를 바란다. 

도움: 김현아<법무법인 GL> 변호사
이효린<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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