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수에서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는 중
좋은 선수에서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는 중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9.05.12
  • 호수 1495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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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한화 이글스> 코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민태’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서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본교 체육학과(88)를 졸업한 그는 선수 은퇴 이후 코치로 야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한화이글스’ 투수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코치의 지도에 대한 신뢰와 감사함을 전할 만큼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인정받고 있다. 투수 ‘정민태’와 코치 ‘정민태’ 그리고 야구인 ‘정민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서산에 위치한 '한화 이글스 2군훈련장'에서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정 코치의 모습이다.

시작은 ‘그냥’ 재밌어 보여서
정 코치가 야구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그때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야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어요. 야구부를 보면서 ‘재밌겠는데’ 싶어서 시작했어요. 워낙 어릴 때니까 구체적인 꿈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좋아서 시작한 거였죠.”

그가 입학한 1988년에 우리 학교 야구부는 명문 그 자체였다. △김동수<LG 트윈스> 코치 △ 여러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김시진<KBO 경기운영위원회> 위원 △류중일<LG 트윈스> 감독 등이 정 코치의 야구부 선배였다. 

이렇게 뛰어난 선배들은 그가 우리 학교에  진학한 큰 이유였다. “대학 야구에서 한양대, 연세대, 고려대가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학교가 실력이 뛰어났고, 뛰어난 선배들 아래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우리 학교에 들어온 그는 한 학년 후배인 구대성<체육학과 89> 동문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좌완 투수인 구 동문과 우완 투수인 정 코치의 이런 활약 때문에 ‘좌대성 우민태’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 코치는 구 동문을 좋은 동료이자 자극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연습할 때 보이지 않은 경쟁을 하기도 했고, 서로의 존재가 동기부여가 됐죠. 연습할 때는 경쟁자였지만 평소에는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어요."

부상을 딛고 일어서 가을의 전설이 되다
대학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내고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팔로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는 가장 끔찍한 부상인 팔꿈치 부상을 입은 것이다.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시달린 정 코치는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 건너가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된다. 현재는 많은 부상 선수들이 수술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투수에게 수술은 은퇴와 같은 말로 취급받았다. 

당시 수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 코치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정 코치는 수술에 대한 언론의 반응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의 수술 소식을 전하며 ‘야구 인생 끝났다’는 식의 보도를 냈고, 이는 정 코치에게 큰 상처가 됐다. 하지만 그런 보도에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이를 갈며 재활에 매달렸다. “재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언론의 반응이었어요. 기사를 보면서 독기를 품고 ‘내가 성공해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재활을 했죠.”

1년 8개월간의 긴 재활을 마친 그는 부상을 입은 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을 보여줬다. 재활에서 돌아오자마자 선발진의 한 자리를 담당했다. 몸담고 있던 태평양 돌핀스가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이후 그는 당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정 코치였다. 프로야구 역사상 포스트시즌에서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그가 유일하다. 정 코치는 그 이유로 큰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꼽았다. “어떤 선수는 큰 경기에서 긴장해서 몸이 굳는 경우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관중이 많고 큰 경기일수록 재밌게 던졌어요. 그것과 별개로 포스트시즌 직전 잠깐의 휴식시간에 재충전을 잘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 그는 평소 선수들과 되도록 가깝게 지내려고 한다. 정 코치는 선수가 코치를 무서워하지 않아야 어려움이 생겼을 때 먼저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렇게 지도한 선수들이 1군에 올라가 잘 던져주면 굳이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아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되기 힘들다?
2009년 선수로서의 생활을 마친 그는 코치 생활을 시작한다. 정 코치는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겪은 어려움과 좋은 경험들을 기반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가 선수 시절 만난 지도자들의 영향도 있었다. “선수로 활동할 때 김시진 코치님께서 정말 친형처럼 잘 이끌어주셔서 지도자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어요. 그분을 보면서 ‘나도 지도자가 되면 김 코치님을 본받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야구계를 넘어 모든 스포츠계에서는 ‘명선수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는 격언이 있다. 정 코치도 이 격언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그는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이야기했다. “저도 처음엔 높은 기준을 두고 선수를 가르치곤 했죠. 그러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선수는 선수대로, 저는 저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그 뒤로는 선수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선수도 잘 따라와요.”

그는 현재 한화 이글스 2군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2군에 내려갔다 1군으로 올라오는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정 코치의 지도에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선수들이 그의 코칭이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 코치는 지도할 때 사소한 것을 바로 잡아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투수라는 포지션이 굉장히 예민해요.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그 영향이 크죠. 근데 이걸 선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2군에 내려오면 미세한 차이를 교정해주려고 노력해요.”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묻자 그는 담담하게 ‘야구판’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투수 코치로서 좋은 투수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 코치의 목표가 이뤄져 팀,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좋은 투수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해 본다. 

▲ 그는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좋은 지도자의 조건이 여럿 있겠지만,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그가 이미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포스트시즌: 정규리그가 끝나고 최종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경기를 말한다.

사진 박용진 수습기자 joseph21@hanyang.ac.kr
도움: 전다인 수습기자 jdi5588@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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