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몰랐다면 그게 더 문제다
[장산곶매] 몰랐다면 그게 더 문제다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4.14
  • 호수 149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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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편집국장>

최근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의 광고가 인종 차별 요소를 담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된 광고는 뉴질랜드 버거킹의 광고로 여기에는 젓가락을 통해 햄버거를 먹는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광고가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SNS상에는 이 광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젓가락을 사용해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아시아인을 희화화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햄버거는 주로 손으로 직접 먹는 음식인데,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젓가락으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무슨 의도였을까. 논란이 커지자 마케팅 매니저가 사과하고 논란은 일단락됐다.

광고계에서 인종차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독일의 가정용품 기업 ‘호른바흐’도 인종·성차별 광고로 구설에 올랐다. 해당 광고는 백인 남성 정원사들이 작업 중에 입은 속옷을 진공 포장해 판매한다는 설정이었다. 광고 속에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판기에서 그 속옷을 구입해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모습과 함께 ‘이게 봄 냄새지’라는 자막이 나온다. 

이 광고를 접한 현지 교민들을 중심으로 해당 업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광고가 독일 사회에 아시아계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성인식을 조장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주독 한국문화원까지 나서 호른바흐의 광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호른바흐는 “이 광고는 인종주의적인 것이 아니며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이 광고 외에도 차별 요소를 담고 있는 광고는 일일이 사례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광고는 대중이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해 상품이나 기업, 집단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광고 한 편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이템 선정, 콘티 제작부터 최종 검수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이 검토를 하는데 왜 이런 광고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광고가 계속되는 이유를 필자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 때문이라고 본다. 첫 번째, 일부러 차별 요소를 넣어 노이즈 마케팅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좋든 나쁘든 사람들에게 제품이나 기업을 알리기 위해 대중이 불편해하는 혹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광고에 넣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광고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차별 광고로 문제가 된 기업 중에는 독일의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이나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돌체앤가바나’ 같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도 꽤 많다. 그렇다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차별 광고의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 광고가 논란이 될 것을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첫 번째 이유가 의도적으로 차별 광고를 만들었기 때문에 죄질은 더 나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이런 광고가 나오는 것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광고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떤 것까지 허용되고 어떤 것은 수용자가 불편해할지 모른다는 것은 큰 문제다.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중은 내가 어떤 광고를 볼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차별 광고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크다. 

‘논란이 될 줄 몰랐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과는 대부분의 기업이 차별 논란에 휩싸이면 택하는 편리한 방식이다. 우리는 광고 제작과정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럴 줄 몰랐다는 뉘앙스의 말이다. 그들의 사과에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왜 그것이 잘못인지,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가 빠져있다. 

광고 제작자는 일반인보다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소수자나 타 집단에 대한 차별에 반응해야 한다. 그들과 그들이 만든 결과물이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도 그들의 ‘편리한 사과’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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