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꿈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꿈 없이 살았습니다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9.04.14
  • 호수 149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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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작가

▲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 동문의 모습이다.

「반 고흐 인생 수업」, 「파리 로망스」의 저자로 알려진 이동섭 동문은 본교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비디오 아트 △사진학 △예술과 공연미학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다양한 전공만큼이나 폭넓은 경험을 쌓아온 이 동문은 ‘노플랜’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채로운 인생을 들여다보자. 

우연히 그의 삶에 들어온 예술
지금은 미술과 깊숙이 관련된 일을 하는 이 동문이지만 학창시절 그는 미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경상북도 성주의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그가 예술을 접할 기회는 미술 교과서를 빼면 없었다. 기껏해야 TV로 접할 수 있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안 좋아했을 수도 있죠. 미술 과목은 고등학교 시절 제 내신 성적을 갉아먹는 요소였어요.”

그런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수업 듣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던 이 동문은 학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교내 영상실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거기서 본 자료 중 흥미가 생긴 것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서관과 영상실을 오가는 그의 대학 시절은 그에게 예술 분야에 흥미를 갖게 했다. 

▲ 대학에 다닐 당시 이 동문은 전공 수업보다는 교양 수업에 푹 빠져있었다. 그는 강의가 끝나면 꼭 질문을 하는 학생이었다. “강의 후에 질문을 하면 꼭 어떤 책을 추천해주세요. 그런 책을 읽으면서 교양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죠.”

보통의 남학생들처럼 이 동문도 군대에 다녀온 뒤 미래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은 없었다. 다만 출퇴근을 하는 직업보다는 내 시간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내 시간이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것보다는 내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업이 없을까를 먼저 생각했죠. 그 후 이걸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가 그다음이었어요.”

그러던 중 이 동문은 지인의 소개로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다. 지금은 미술관 내에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흔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이 흔치 않았다.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며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홍보해주는 일을 맡았다. 그곳에서의 일은 즐거웠지만, 더 넓은 곳에서 일하고픈 생각이 있던 이 동문은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은 재미있었고 일의 미래가 어두운 것도 아니었는데, 여기서 계속 일하면 다른 일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그게 겁이 나서 다른 일에 대한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인생의 전화점이 된 파리 유학
우연에 우연이 겹친 걸까.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유럽에 싼값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여행객이 확 줄어 여행사에서 평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그때 유럽으로 3개월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갈 돈만 겨우 마련해 간 여행이라 말이 여행이지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이 동문이다. “처음엔 되게 좋았어요. 나중에는 돈이 부족해서 바게트와 물만 먹고 생활하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처음에 가졌던 유럽에 대한 환상은 많이 사라졌어요.”

세 달간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유럽으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이 동문은 여러 나라 중 유럽 여행 당시 가장 오래 머물러 익숙하고 학비도 저렴한 프랑스로의 유학을 결심한다. 그렇다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유학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뭘 하고 싶어서 유학을 하러 갔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도피로 유학을 택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단 유학 가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보자는 얕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그는 처음 대학교에 입학할 때와 비슷한 생활을 이어갔다. 수업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파리 도심을 돌아다니며 전시회나 공연장을 구경했다. 문화공연과 전시가 거리에 가득한 파리는 그에게 좋은 학교가 됐다. 

그러던 중 이 동문은 국내 신생 뮤지컬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지인의 부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을 하며 유명 작가들과 인터뷰를 나누기도 하고, 패션 컬렉션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그가 지금 글을 쓰는 일을 하는데 자양분이 됐다. “파리로의 유학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만약에 제가 다른 도시, 런던이나 베를린으로 유학을 하러 갔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됐겠죠.”

프랑스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처음으로 '외부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예술을 이해하는데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어 보는 게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면 그럴 존재가 되는 거죠. 참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처음으로 '외부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예술을 이해하는데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어 보는 게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면 그럴 존재가 되는 거죠. 참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노플랜맨’ 이동섭
그는 자신의 삶엔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가득했던 유학 생활 동안 수많은 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이 동문은 계획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많이 계획을 세워 놓으면 사람이 뻣뻣해지고 탄력적으로 상황에 대응을 못 하게 돼요. 대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정도만 알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것만 알고 있으면 여러 가지 변수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그에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동문도 직업이 정해지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그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불안함을 감수하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자유로우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을 수는 없어요.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는 거죠. 자유와 안정을 동시에 원하는 건 모순이에요. 저는 자유를 원해 안정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해요.”

▲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부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직장의 시스템’이 부럽다고 답했다. “혼자 일하면 자기가 다 책임을 져야 해요. 회사에 다니면 자신의 몫을 하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도와주는 점은 부러울 때도 있죠.”

이 동문은 직업에 대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직업을 딱 하나에 가둘 수 없다고 말하며, 굳이 하나로 말하자면 ‘작가’라고 답했다. “회사원이 퇴근해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다고, 그 사람을 유튜버라고 부르진 않죠. 저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어떤 직업을 제 직업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작가라고 말했지만,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도 있고, 말로 표현할 때도 있는 것처럼요.”

이 동문은 그의 말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작가처럼 책을 쓰기도 하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가 하면, 방송에 출연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동문의 삶에 계획은 없었지만 ‘나는 내 시간을 많이 누리며 살고 싶다’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우리도 당장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그의 철학인 ‘내 시간을 많이 누리는 것’이 곧 달콤한 인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조시영 수습기자 siyoung2000@hanyang.ac.kr
도움: 노승희 수습기자 seunghi0703@hanyang.ac.kr
황수진 수습기자 pooh397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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