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 법안,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
네이밍 법안,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
  • 박용진 수습기자
  • 승인 2019.04.14
  • 호수 1493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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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운송설비 점검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16일 뒤 국회에서 ‘김용균법’이 통과됐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안은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법안을 발의한 사람이나 사건의 피해자 및 가해자 등 특정 인물의 이름을 붙인 법안을 ‘네이밍 법안’ 혹은 ‘실명 법안’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이목 집중
네이밍 법안의 종류는 △법안을 주도한 사람을 딴 법안 △피해자 이름을 딴 법안 △처벌 대상자 이름을 딴 법안 △쟁점이 된 인물의 이름을 붙인 법안 등으로 다양하다. 네이밍 법안은 법안의 이름이 유명인이나 화제가 된 사람들의 이름으로 지어져 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A씨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네이밍 법안은 이름 하나로 사건을 압축시킬 수 있어 사람들이 전반적인 법안 내용에 대해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빠르게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법안 추진에 동력을 얻어 적극적인 법안 발의가 이뤄지게 한다. 또한 법안 홍보 효과가 높아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김용환<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네이밍 법안으로 사람들이 관련 사건 또는 법안의 배경을 더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밍 법안에 묻힌 문제점들
그러나 이름 하나로 법안을 통칭하는 것은 법안이 지닌 의미를 지나치게 압축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름에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네이밍 법안이 피상적인 내용만을 전달해 사람들이 법안의 내용을 다른 방향으로 인식 할 수도 있다”며 네이밍 법안의 과도한 축약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네이밍 법안의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태도가 작용해 해당 법안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며 네이밍 법안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의 실명이 사용된 네이밍 법안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성범죄 전과자 조두순이 초등학생 나영이(가명)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 했다. 이후 만취 상태에서 일어난 성범죄를 정상참작 할 수 없다는 골자의 ‘나영이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 발의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조사 방식과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관련해 강동욱<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네이밍 법안은 피해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계속해서 회자되는 고통을 줄 수 있다”며 네이밍 법안의 2차 피해 가능성을 언급했다. 강 교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시선을 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관계가 중요하다”며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좀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 때
하나의 법안이 제정돼 국회를 통과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점에서 네이밍 법안은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시급한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나친 축약은 그 본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지고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 홍보 목적으로 네이밍 법안이 활용 돼서는 안된다. 법안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발의된 법안으로 정의실현이라는 법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도움: 강동욱<동국대 법학과> 교수
김용환<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고다경 기자 dakyung304@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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