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실패한 사랑의 글쓰기, 한대신문에서
[취재일기] 실패한 사랑의 글쓰기, 한대신문에서
  • 우지훈<문화부> 정기자
  • 승인 2019.04.14
  • 호수 1493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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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지훈<문화부> 정기자

세상엔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많다. 특히 사랑은 그 어느 일보다도 난해하다. 쾌락 이외에도 상대의 부재에서 느끼는 불안과 베일에 싸인 상대의 감정에 대한 의심을 감수해야 한다. 난무하는 쾌락과 고통의 충돌 속에서 어느 하나 통제할 수 없기에 겪게 되는 실패는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을 주고받을 때 겪는 편집증적인 애착과 타오르는 열정, 일렁이는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실패보다도 아름답다.

이렇게 위태로운 사랑을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롤랑 바르트는 저서 「사랑의 단상」에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베르테르를 통해 사랑을 설명한다. 그는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그려내지 못하는 장면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사랑의 속성을 발견한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어렴풋이 실루엣만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랑하는 여인을 똑같은 모습으로 그려내는 데 실패한다.

한대신문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은 베르테르처럼 실패하는 사랑을 목도하는 일이다. 기사 작성은 베르테르가 했던 실루엣 그리기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자세한 기사를 쓰려 하지만 데스킹 과정에서 던져지는 물음들은 내 그림이 로테를 그려내기는커녕 실루엣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수차례 정제한 언어로 적은 기사마저도 설명하기 실패한 공백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그 공백이 독자에게 왜곡돼 전달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렇듯 기사 양식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렇게 애써 쓴 기획안과 기사는 결코 나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 동료 기자들의 손을 거쳐 재구성될 때 나의 기사는 이미 한대신문 기자 모두의 기사가 된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다른 사람이 돼 있듯, 기사가 조판과정에서 부장, 편집국장, 간사, 교수를 거쳐 새롭게 만들어질 때 나 역시 과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돼있다.

한대신문에서는 독자가 읽기에 믿을만한 정보가 담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전문가를 인터뷰한다.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최대한 예의를 갖춰 보내는 메일의 무게감은 어느 사랑 고백 못지않다. 인터뷰를 거절당할 때의 실망감과 질문지를 보내고 며칠 뒤 새롭게 도착한 메일을 열기까지의 기대는 사랑하는 이와의 쪽지마냥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다.

방학 중에는 다음 학기에 쓸 기사를 준비하는 방중회의를 한다. 몇 주간 매일 등교해 다음 학기에 쓸 기사 소재를 찾을 때, 어떤 기사를 쓰면 독자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서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사를 던지는 게 아니다. 같은 대학생이자 한양인으로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추려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스스로 광대 되기를 자처한다. ‘읽어 달라’ 구걸하고 스스로 객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비굴함은 질척거리는 행동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진정성이 되곤 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한대신문에서 베르테르가 돼 실루엣을 그린다. 오늘도 설렘과 긴장, 불안과 굴욕 속에서 기사를 쓴다. 그렇게 나는 실패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배우며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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