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 실수한 인생에서 뭔가 배우시겠습니까?
[칼럼] 제 실수한 인생에서 뭔가 배우시겠습니까?
  • 이요훈
  • 승인 2019.04.08
  • 호수 149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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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요훈<IT 칼럼니스트>

무엇을 쓸까 고민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한대인’에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SNS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반면교사가 가장 좋은 교사라며, 그냥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쓰라더군요.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내 실패한 인생에서 뭔가 배우시겠습니까?’였습니다. 그럴듯하지만, 끝나지도 않은 인생, 실패했다 하니 슬프네요. 제목을 바꿔봅니다. ‘실수한 인생’, 적당하군요. 

얼마 전, 한양대 후배들 앞에서 특강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회에 진출한 선배가 경험담을 얘기하는 자리였습니다. 칼럼니스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잠깐 같이 잡담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같이 있던 후배가 그럽니다. “전 솔직히 선배님 강의를 들으러 오지 않았습니다”하고요. 뒤에 있는 변호사가 된 후배 이야기를 들으려고 왔답니다. 아, 그렇죠. 제가 신입생일 때도 그랬습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기들이 많았죠. 괜찮습니다. 저는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제 첫 번째 실수는, 스스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 척 살아왔다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하고, 필요하다 믿으면 싸우는 것도 꺼리지 않았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편이라, 한 자리에 오래 붙어있기도 합니다. 잡지에 글을 쓸 때는 폐간될 때까지 연재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당연히 제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갑니다. 그때 조금만 더 자유로웠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생각합니다. 빛나지 않아도 좋다, 칭찬받지 않아도 좋다, 그럭저럭 살아가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존재만 되어도 괜찮다-라는 걸 알았더라면.

두 번째 실수는, 관계에 성실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전에 전 여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문화예술단체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쪽 부모님은 절 취직도 안 한 녀석이라며 싫어하셨습니다. 여친이 부탁하더군요. 잠시라도 취직하면 안 되겠냐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땐 여러 이유를 댔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됐습니다. 취직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요. 내가 부정 당하는게 싫어서 헤어질 만큼, 관계에 충실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대가일까요? 저는 사십 대 독거 중년으로 늙었습니다. 그냥 당신이 인기 없는 남자여서 그런 거라고 한다면, 미워할 겁니다.

세 번째 실수는, 삶에 필요한 기술을 미리 배우지 못한 겁니다. 세금 문제부터 비롯해 계약서를 쓰는 법, 자산을 모으거나 돈 씀씀이를 관리하는 법, 자신을 홍보하는 방법 등 알아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못 받은 원고료, 아마 꽤 될 겁니다. 요즘 대학에선 이런 기술,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심지어 저는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논술 강사가 되어 강의할 때, 죽은 사람들 말만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철학이, 실은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공부였다는 점을 깨닫고 깜짝 놀랄 정도로요. 세상에, 그 많은 돈을 내고 대학에 다니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후회하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어릴 적 꿈은 이미 이뤘거든요. 여행 다니며 적당히 글이나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꿈이었으니까요. 좀 한심해 보이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되긴 됐습니다. 됐지만, 궁금하긴 궁금합니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하고요. 그리고 또 궁금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은, 내 어떤 미래를 만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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