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내게 울림을 준 인생 드라마
[장산곶매] 내게 울림을 준 인생 드라마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4.07
  • 호수 1492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훈편집국장
▲ 김종훈<편집국장>

인생 책, 인생 영화처럼 어떤 단어 앞에 ‘인생’이 붙으면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 중 최고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에게 큰 울림을 준 작품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이 거장이나 대문호의 것일 필요는 없다.

필자의 인생 드라마는 노희경 작가가 극본을 쓴 <괜찮아, 사랑이야>다. 16부작인 긴 드라마지만 5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이 드라마는 여느 로맨스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굉장히 잘생긴 남자주인공과 매우 예쁜 여자주인공은 우연히 만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고 몇몇 위기를 겪은 끝에 결혼한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뻔하디뻔한 전개를 갖고 있었지만 몇몇 이유로 필자의 인생 드라마 되기에 충분했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등장인물 상당수, 거의 전부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주인공 중 하나인 장재열(조인성 분)은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당시 폭력을 피해 숨어든 화장실을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는 그는 커서도 화장실이 아니면 잠을 잘 수 없는 강박을 갖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지해수(공효진 분)도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어머니의 불륜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 뒤로 이성과의 스킨십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강하게 남게 된다. 이로 인해 애인과의 관계에서 스킨십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외상을 입는 모습이나 암 같은 큰 병을 얻는 장면은 자주 등장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등장하는 것은 드물었다. 등장 하더라도 단편적으로 정신질환을 앓은 인물의 단점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드라마가 필자의 인생 드라마가 된 이유가 바로 등장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다. 이 작품은 이들을 전혀 인위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때문에 드라마의 후반부를 볼 때쯤이면 등장인물이 돌발행동을 해도 시청자들은 놀라지 않는다. 강박이나 증상을 꾸준히 화면에 노출해 그 인물이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상황을 겪어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또 기존 미디어에서 정신질환자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면 이 작품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필자의 인생 드라마가 된 또 다른 이유는 명대사 때문이다. 

“암이다. 다리가 잘린 환자다. 그런 환자들은 위로를 받는데 정신증 환자들은 사람들이 죄다 이상하게 봐. 꼭 못 볼 벌레 보듯이. 큰 스트레스 연타 세 방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게 정신증인데 자기들은 죽어도 안 걸릴 것처럼.”

극 중 여러 명대사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이 대사를 들은 순간 필자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유독 개인의 성격이나 인성 자체를 탓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도 틱장애처럼 행동 장애나 강박 증세를 보이면 ‘쟤 왜 저래’ 하며 이상하게 쳐다보기 일쑤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진 정신질환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한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맞다. 길에서 혹은 학교에서 나와 혹은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보면 무관심하게 지나가거나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이 드라마를 접한 뒤로는 타인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그 사람 자체를 단정하는 태도를 바꾸려고 애썼다. 알고 있던 사람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을 보여도 ‘무슨 일이 있나’라고 가볍게 생각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병이 수시로 오고 낫는 과정이 반복되는지 모른다.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바라보자.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