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허점’을 메워라!
김용균법 ‘허점’을 메워라!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4.08
  • 호수 1492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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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산안법 역시 노동자 안전 보장에는 부족해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가 홀로 작업하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3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796명 중 309명이 하청 노동자로, 전체 산재 사망 사고에서 약 4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 관한 개정의 목소리가 확대됐다. 국회는 이러한 목소리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산안법은 개정의 시발점이 된 김 씨의 사망을 기리며 ‘김용균법’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김용균법, 무엇이 달라졌을까
산안법 전부 개정은 산안법이 처음 제정된 1981년 이후 28년 만이다. 전부 개정이라고 할 만큼 많은 부분이 추가되고 변경됐다. 산안법의 주요 내용은 △법의 보호 대상 확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원청 사업주 산재 예방책임 강화다. 우선, 개정 산안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확대됐다. 산안법 제1조는 산안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현 산안법은 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로 한정 지었다면 개정 산안법에서는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됐다. 따라서 이전에는 산안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종사자, 가맹점까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현 산안법에서는 사업주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위험한 작업을 도급할 수 있다. 그러나 개정 산안법에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청 노동자에게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급을 제한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산안법에서 지정한 위험한 업무의 경우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산재 예방에 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이를 불이행할 시 받을 처벌도 강화됐다. 개정 산안법 제63조에 따라 하청 업체와 도급 계약을 한 도급인 즉, 원청 사업주가 안전 조치와 보건 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일부 위험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다. 또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이 처벌을 받은 뒤 5년 이내에 다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면 가중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개정 산안법, 곳곳의 허점들
많은 사람이 개정 산안법을 환영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개정 산안법 역시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정혜선<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산안법의 전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이 남아 있다”며 개정 산안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개정 산안법의 주요 허점은 △협소한 법의 적용 범위 △‘위험의 외주화’ 여지 △모호한 안전 및 보건 조치 △효과 없는 처벌 강화로 크게 4가지다.

개정 산안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는 매우 좁다. 우선 개정 산안법의 시발점인 김용균 씨의 발전소 정비 업무가 도급 금지 업무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에 관해 기존의 ’기업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발전소 정비 노동자의 안전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기업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안전 및 보건관리자는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한 명만 두면 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한 안전 및 보건관리자를 한 명만 둔다. 따라서 사업장에 배치된 한 명의 안전 및 보건관리자가 모든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유성규<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은 “기존에 법이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것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유 집행위원은 발전소 정비 업무 외에도 산안법 자체의 적용제외 규정이 만든 산안법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산안법은 적용제외 규정으로 △상시 근로자 5명 미만의 사업장 △환경 정화 및 복원업 △광물 채광‧채굴 등의 공정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산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 교수 역시 “산안법의 대부분은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산재의 80%가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다. 개정 산안법은 개정의 핵심인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완전히 시행하지 못했다. 유해한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개정 산안법 제58조 2항은 일시‧간헐적으로 하는 작업의 도급을 허용했다. 유 집행위원은 “지금까지 산안법 어디에도 ‘일시‧간헐적’이라는 말이 없었다”며 “이 조항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 없이도 도급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유 집행위원은 “이는 명백한 법의 후퇴”라고 지적했다.

개정 산안법으로 원청 사업주의 노동자 안전 책임은 확대됐지만 원청 사업주가 해야 할 구체적인 시행 방법에 관한 조항은 없다. 정 교수는 “개정안에는 원청의 안전 및 보건 조치 내용이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아 원청 사업자의 역할이 모호해질 수 있다”며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의 업무와 원청 기업의 안전 및 보건 조치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해 개정 산안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 산안법은 형의 상한선을 올리고 가중 처벌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산안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정 교수는 “2018년 5월 구의역 사망사고의 1심 판결은 용역업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서울메트로 전 대표 등 6명에 대해서는 각각 500만 원에서 1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며 “이를 통해 근로자 사망에 대한 처벌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개정 산안법에서 사업주의 처벌 수준을 상향했지만 실제 집행되는 처벌 수준은 항상 상한선보다 낮다”며 “처벌의 하한 수준을 정하지 않는다면 처벌의 실효가 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행령에 주목해야
개정 산안법은 지난 1월 15일에 공포돼 내년 1월 16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산안법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이 필요하다. 유 집행위원과 정 교수 모두 “산안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명확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는 산안법 시행령에 관해 이번 달 안으로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정 산안법 시행령이 개정의 취지를 잘 반영했는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도급: 흔히 하청으로도 불리며,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일컫는다

도움: 유성규<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정혜선<가톨릭대 보건대학원 산업간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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