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른 좋은 것들에 노(No) 라고 말할 용기
[칼럼] 다른 좋은 것들에 노(No) 라고 말할 용기
  • 배태준<산업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19.03.25
  • 호수 1491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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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준산업융합학부 교수
▲ 배태준<산업융합학부> 교수

대학 생활은 바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꺼번에 경험하며 사는 게 당연했다. 진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회계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사설 학원에 다니고, 법조계 진로가 끌려서 전과를 알아 봤으며, 행정고시를 준비하러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생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도지사가 되신 선배님이 친히 모교를 방문하셔서, 한 말씀을 남기셨다. “인생에서 돈이냐, 명예냐, 권력이냐. 그 중 하나만 선택하라!” 경영학 용어로 하자면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거다. 바꿔 말하면, 매력 있는 다른 두 개는 포기하라는 말씀이었다.

비단 사람의 인생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다가, 망하는 기업이 비일비재하다. 당시 세계 최대 전자회사인 ‘RCA’를 물려받은 로버트 사노프는 TV 외에 다른 곳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출판사 랜덤하우스, 렌트카 허츠를 인수하였고, 카펫 제조공장부터 외식사업에도 기웃거렸다. 급기야 컴퓨터 사업에 지금 돈 29억 8천5백만 달러 (우리 돈 3조3천억 원)를 쏟아부었다. 결국 회사는 적자가 누적되고, 후에 GE에 인수 합병되었다가 분야별로 분할 매각되었다. 

크림빵부터 호빵까지 우리나라 빵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삼립식품도 허창성 창업주 이후, 장남인 허영선 전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고서, 본업인 제빵 사업보다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음료 사업을 시작했고, 우동전문점을 열었다. 패스트푸드도 진출하고, 리조트 사업에도 큰돈을 투자하다가 97년에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맞았다. 

반대로, 매력 있어 보이는 것도 과감하게 포기해서 오히려 더 잘나가는 회사도 있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회사로 자리매김 했지만, 1997년만 하더라도 적자에 허덕이고, 컴퓨터 부문 시장 점유율이 3%밖에 되지 않았다. 비슷한 제품라인이 19개씩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그는 70%가 넘는 제품라인을 싹 없애버리고, 데스크톱 하나, 노트북 하나만 남겼다. 그 결과 10억 달러 적자에서 3천만 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그 뒤 우리가 아는 애플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창업을 하고 싶다면, 선택과 집중은 더 빛을 발할 것이다. 매력 있는 많은 산업 분야가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창업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MIT 대학의 카퍼지크 교수와 맥길 대학의 욘킨 교수가 199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음반 회사를 창업한 아티스트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작곡, 프로듀싱, 악기 연주, 보컬 등 두루두루 다 할 줄 아는 아티스트가 창업을 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한 장르만 우직하게 팠을 때,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것이 나타났다. 발라드면 발라드, 힙합이면 힙합 한 분야를 꾸준히 깊이 있게 해야 비로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를 기웃거리는 아티스트는 비록 다재다능하더라도 음반 창업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선택과 집중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한다. 오래전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포럼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집중이란 다른 좋은 아이디어 수백 개에 노(NO)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폭넓은 경험을 해보는 것은 대학 생활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마음껏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진로를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많은 좋은 것들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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