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안접속(https) 차단 정책,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사설] 보안접속(https) 차단 정책,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 한대신문
  • 승인 2019.03.11
  • 호수 149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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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정부는 디지털성범죄 대책의 일환으로 불법도박·음란물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을 강화하는 ‘보안접속(https) 차단 정책(이하 차단 정책)’을 시행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를 통해 보안접속을 무력화하는 ‘서버네임인디케이션 필드차단 방식(이하 SNI 방식)’으로 유해사이트 접근을 막기로 했다. SNI 방식은 인터넷 보안접속 시 암호화하기 전 주소를 파악해 유해사이트를 차단한다. 지금까지 이런 SNI 방식으로 차단된 유해사이트는 800여 곳에 달한다. 

이번 차단 정책은 감청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보안접속은 암호화된 기술이라 인터넷 사용자와 서버 사이에 어떤 데이터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정책으로 사용자가 접속 시도한 사이트를 미리 확인하고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방문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감청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준다. 전문가들은 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이 개인의 인터넷 활동 내역을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감청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쟁이 불거지며 ‘차단 정책 반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지난달 21일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국민 모두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꼭 필요한 조치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일부 해외 불법사이트 접속 차단이 해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통위는 “차단 방식을 잘못 적용한 KT 측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KT가 이미 방통위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고 방통위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방통위의 태도는 국민과의 약속을 엄중히 여긴다고 보기 어렵다. 방통위가 이 약속을 지키려면 차단 정책에 대한 시급한 보완책 마련과 함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차단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더 이상의 늦장 대처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은 곤란하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정책이 인터넷 검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임종인<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중국이나 일부 아랍 국가들도 처음 명분은 불법 성인물 차단으로 시작해, 인터넷 통제를 강화했다”며 “불법 성인·도박 사이트 차단은 명분일 뿐 실제 목적은 통제·검열에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차단 사이트 선정부터 실제 집행까지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사회적 합의를 마친 후 차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현 정책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감청 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사전 작업과 정책 시행 사후의 대처가 모두 미흡했다. 불법사이트 운영을 막는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우왕좌왕 혼선을 빚는 정부의 일처리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현 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동시에 불법사이트 운영자를 색출해야만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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