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사자에서 사자군단의 수장으로
아기사자에서 사자군단의 수장으로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9.03.11
  • 호수 149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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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농구부> 감독

3월의 개강과 함께 대학 스포츠도 겨울잠에서 깨 기지개를 켠다. 우리 학교 농구부도 지난겨울 구슬땀을 흘리며 2019년 시즌을 준비했다. 그 중심에는 정재훈<농구부> 감독이 있다. 정 감독은 우리 학교 농구부 출신으로, 다양한 팀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고 모교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아기사자로 입학했던 그가 사자군단의 수장이 되어 돌어왔지만, 우리 학교 농구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올해 우리 학교 농구부 부임 2년 차를 맞은 정 감독의 농구가 궁금하다.

우리 학교 체육부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정 감독의 모습이다.
▲ 우리 학교 체육부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정 감독의 모습이다.

우연히 시작한 농구, 꿈이 되기에 충분했다
농구선수부터 농구감독까지 이어진 그의 삶이지만 정 감독이 처음부터 농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또래보다 크다는 단순한 이유로 다른 학교 농구부의 입단제의를 받는다. 이전까지 정 감독은 단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소년이었다.

그는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농구에 푹 빠졌다. 정 감독은 80년대 시작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농구대잔치’를 보며 농구선수의 꿈을 꿨다. “‘농구대잔치’에서 본 이충희 같은 스타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웠어요. 모든 운동선수가 그렇지만 늘 국가대표가 꿈이었죠.”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꾸준히 실력을 키워간 그는 우리 학교 농구부에 입단한다. 정 감독이 들어왔던 1992년 우리 학교 농구부는 고학년 선수가 적은 편이었다. 선배 선수가 4명뿐이었고, 나머지 8명은 모두 신입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포함한 1학년은 비교적 많은 출전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우리 학교 농구부의 주축으로 발돋움했다.

그는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1994년 ‘대학농구연맹전’을 꼽았다. 당시 우리 학교 농구부는 정 감독을 포함해 추승균, 이흥섭 선수 등을 앞세워 2차 대회에서 고려대학교와 공동우승을 차지한다. “오랜 시간 손을 맞춘 선수들에 실력 있는 신입생이 합류해 우승할 수 있었어요. 어느 대회를 나가더라도 4강에는 진출했죠.”

짧고 굵었던 프로 생활,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대학 생활을 마친 정 감독은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하며 프로리그에 진출한다. 오리온스에서 4년간의 활동을 한 그는 2001-02 시즌 첫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을 더 이어나갈 수 있는 젊은 나이었지만 그는 과감히 농구선수 생활을 마쳤다. 짧았던 프로 생활에 아쉬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며 “하지만 우승을 하고 챔피언 반지를 껴봤기 때문에 선수 생활에 대한 후회는 남지 않는다”고 답했다.

은퇴 후 그는 1년 만에 전력분석코치로 오리온스에 돌아왔다. 당시에는 스포츠 현장에서 전력분석이 지금처럼 관심을 받지 못할 때였다.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 정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면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한 경기를 분석하는데도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려요. 상대팀 선수를 분석하고, 영상을 편집하는데 하룻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도 많았죠. 밤새 커피를 마시며 버티는 일은 힘들었지만, 경기를 분석하며 배운 것도 많아요.”

미국에 건너가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던 정 감독은 우연한 기회를 잡는다. 지인의 추천으로 미국에 간 그에게 현지 농구팀의 코치가 관심을 보였다. 당시 미국프로농구계에는 아시아 출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관중석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이 현지 코치의 눈에 띄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미국프로농구 D리그팀 객원코치로 참여했다. “에이전트로 일하던 지인이 농담처럼 현지 코치에게 ‘다음 시즌에 저 친구가 너희 팀에 함께 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 코치가 본인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답해서 덕분에 기회를 얻었죠.”

△여자프로농구팀 △남자프로농구팀 △고등학교농구팀 등 여러 팀에서 코치와 감독을 맡은 그도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는 여자프로농구팀에서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남자선수와 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모든 기준이 남자에 맞춰져 있었어요. 훈련을 하던 중에 ‘빨리 좀 뛰어’ 라는 말에 선수들이 ‘이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예요’ 라고 답한 것이 기억에 남네요. 그때부터 남자선수들과의 차이를 신경을 쓰며 지도하려고 노력했죠.”

30년 넘게 농구에만 몰두한 그가 생각하는 좋은 농구는 무엇일까. 그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다섯 명이 함께 움직이는’ 농구라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벤치에 있는 선수 그리고 코치, 감독까지 팀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인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30년 넘게 농구에만 몰두한 그가 생각하는 좋은 농구는 무엇일까. 그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다섯 명이 함께 움직이는’ 농구라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벤치에 있는 선수 그리고 코치, 감독까지 팀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인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자군단의 수장으로 돌아오다
지난해 정 감독은 농구부 감독으로 우리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모교에서 감독을 맡게 돼 영광이지만 부담도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양대학교 감독이라는 자리를 제가 맡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하고 있었어요. 갑작스럽게 감독을 맡게 돼서 준비를 제대로 못 한 점 때문에 부담이 더 컸어요.”

캠퍼스로 돌아온 그는 감독이자 학교 선배로서 애정을 갖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정 감독은 대학 선수들은 아직 학생이기에 눈앞의 성적, 결과보다는 미래를 보고 지도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어 당장 성적을 내거나 프로에 진출하는 것에 혈안이 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선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철학 때문인지 정 감독은 올해 농구부의 목표를 묻는 말에도 성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2019년 그의 목표는 지난 시즌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고 분위기 쇄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한양대 농구부 달라졌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몇 점 차가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마추어 정신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들은 그의 철학에서 정 감독의 후배와 농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 2년 차를 맞는 정 감독과 한양대 농구부가 코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우리 학교 농구부의 홈 개막전은 오는 25일 올림픽체육관 메인홀에서 열린다. 농구부를 응원하며 학업 스트레스에서 잠깐 벗어나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 주저하던 그는 ‘농구부사랑’이라고 적었다. 매일 농구부와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 같다.
▲ 조금 주저하던 그는 ‘농구부사랑’이라고 적었다. 매일 농구부와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 같다.

사진 정주엽 기자 jooyup100@hanyang.ac.kr
도움: 강승아 기자 saaa216@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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