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
'미술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
  • 우지훈 기자
  • 승인 2019.03.11
  • 호수 1490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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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해 4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을 발표했다. 문체부는 미술 창작자와 향유자 모두 즐길 수 있는 미술 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미술로 행복한 삶’을 정책 비전으로 제시했다. 계획 발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미술인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대중은 미술과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위해
문체부가 실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술 분야의 예술 활동 관련 서면계약 체결 경험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계약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다 보니 작가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동일한 조사에 따르면, 체결된 계약 중에서도 부적절·부당한 계약 내용으로 △낮은 임금 △불확실·불합리한 업무 규정 △임금 미지급 체납 △저작권 침해 구분 모호 △부당한 임금 규정 등 순으로 불공정성 문제가 지적됐다. 미술생산자모임 관계자는 “복잡한 창작환경 때문에 합의를 문서로 만드는 일을 지양해왔다”며 “설사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계약서 내용이 부실하거나 부당한 조항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작가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미술계 내 불합리한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6종을 지난해 4월 처음으로 제안했다. 표준계약서에 대해 토론회를 거친 후, 지난 2월 최종적으로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11종의 제정안을 고시했다. 제정안에는 △지적재산권 △표현의 자유 △위탁 판매와 수익 정산 △성폭력·성희롱 방지 △손해배상 등 각종 권리가 서면으로 명시됐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미술인이 미술 활동을 통해 얻는 평균 수입은 연 614만 원으로, 예술인 전체 연 1천255만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편 예술 활동 평균 지출은 △창작 공간 임대료 △재료비 △운반비 등을 포함해 연 421만 원으로, 예술인 전체 평균 연 367만 원에 비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예술 활동 수입이 ‘없다’고 응답한 미술인은 무려 54.4%로 집계됐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미술인에 대한 기본적이고 정당한 대가 기준의 필요성이 꾸준히 논의돼 왔다. 2017년 문체부는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대가 지급방식으로 ‘미술작가보수제’를 시범 도입해 실시했다. 또한 미술작가보수제는 이번 계획에 구체화돼 제도에 반영됐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미술
문체부에서 실시한 2018년 문화향유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술 전시회의 관람률은 15.3%로, △영화 75.8% △연극·뮤지컬 27.4% △대중음악·연예 21.1%로 그 다음이다. 이는 다른 문화 활동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7년 문예연감에 따르면, 전시 개최는 서울 5,654건으로 43%였고, 다음으로 경기 10.4%, 이외 지역은 10%가 채 되지 않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이는 전시 개최에서의 극명한 지역 편차를 보여준다.

문체부는 저조한 미술 전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미술 전시 향유에서 지역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이번 계획에 포함했다. 우수 전시를 유휴 공간에 지역 순회 전시할 수 있도록 하고, 연령과 방문 목적에 맞는 쉽고 재밌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미술평론 전문화·전업화 지원 계획이 포함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미술의 특성상 향유자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은데, 이는 대중이 미술 전시를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박신의<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전공> 교수는 평론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작가 발굴이나 흐름을 주도하는 기획자”이자 “작가의 시장성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매개자이므로 미술평론 활성화는 미술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의 계획은 창작자와 향유자를 매개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인 평론가를 확충해 미술 전시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쉽지 않은 ‘미술로 행복한 삶’
미술 창작자 권리 증진과 미술 향유 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단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이번 계획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우선 미술작가보수제 지급 기준에 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체부는 개인전 및 단체전 참여 횟수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해 보수를 결정하는 산출 방식을 제안했다. 미술계는 이런 산출 방식에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술생산자모임 관계자는 “경력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눌 수 없다”며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참여도는 등급으로 나눌 수 없는 동일한 것”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정부와 미술인의 이런 입장 차에 대해 박 교수는 “예술가의 활동을 일련의 노동에 대한 대가 산정과 같은 논리로 접근하다 보면 활동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데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술생산자모임 관계자 역시 “미술창작 대가는 단순히 갑을간 고용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건비가 아닌 ‘미술 창작 활동에 대한 존중과 전시 참여에 따른 보상’”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제시한 방안에 대해서도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역문화를 죽이고 수도권 방식의 전시를 그대로 붙여넣는 방식은 지역간 미술 향유 격차 해소에 있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역간 문화 격차는 단순히 기반시설이나 콘텐츠만 채워진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문화를 누가 만들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술계는 창작자와 향유자가 함께 소통하는 곳이다. 관객 없는 작품 없고, 작품 없이는 관객도 없다. 미술인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관객이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행복한 미술계’가 형성된다. 이를 위해 지적된 문제점들을 보완해 현실에 부합하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으로 개선 시행돼야 할 것이다.

도움: 미술생산자모임
박신의<경희대 경영전문대학원 문화예술경영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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