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취재일기]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 오수정 기자
  • 승인 2019.03.04
  • 호수 1489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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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대학보도부정기자
▲ 오수정<대학보도부> 정기자

한대신문을 그만두고 싶은 때가 있었다. 필자는 한대신문을 ‘한 줄짜리 스펙’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작 그 ‘한 줄’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수습기자였기에 한대신문 ‘체험판’ 정도만 겪었다는 것을 알지만 기자가 되겠다는 꿈도, 한대신문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없는 필자가 감당하기에 한대신문은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한지 2년이 다 되도록 공모전, 대외활동 경험 하나 없어 뒤쳐졌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대신문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한대신문의 역사, 신문사에 대한 정기자들의 자부심, 한대신문을 읽는 많은 학교 관계자와 학우들은 필자의 단순한 지원 동기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학교생활을 하며 기자 일을 병행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30분짜리 인터뷰 녹취를 푸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고 인터뷰이를 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연락해 인터뷰를 부탁했다. 늦은 밤까지 라운지에 남아 기사를 작성하느라 수면부족에 시달리기도 했다. ‘거리의 리포터’ 코너를 위해 길거리에서 ‘내가 종교를 전도하는 사람이 아닌 한대신문 기자’임을 해명하며 인터뷰이를 구하는 일은 몇 번을 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종강 후 시작된 ‘방중회의’는 4주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신문사에 출근해 기획안을 작성하고 회의하는 과정이다. 학교를 톺아보며 기획안으로 쓸 소재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고뇌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할당된 기획안을 작성하지 못하면 근무 시간 외에 남아 기획안을 마무리하고 가야 했다. 회사에 입사해 출근과 야근을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방학의 반을 방중회의로 보내고 나니 소중한 방학을 한대신문에 뺏겼다는 생각까지 들며 억울해졌다. 한대신문을 정말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한대신문을 그만두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한대신문을 겪어본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한 줄짜리 스펙’에 ‘한대신문 기자’라는 단어로 기재되겠지만 ‘한 줄짜리 스펙’의 가치는 적히지 않은 경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한대신문 기자로서 1년의 시간이 남았다. 남은 기간 한대신문에서의 경험들이 필자를 힘들게 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들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의 이름이 걸린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때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 필자가 쓴 기사로 개선된 학교를 보며 보람을 얻을 수도 있다. 한대신문을 겪어보지도 않고 이런 것들 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유명 인터넷 강의 강사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을 했다. 힘든 수험생활을 버티게 해줬던 말이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끝이 천국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도착점이 천국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다. 1년 뒤 필자가 마주할 한대신문의 도착점이 고작 스펙 한 줄에 그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확인해 보려한다. 도망치지 않고 도착한 곳이 천국일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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