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동물원·수족관법, 동물 복지는 어디에
허울뿐인 동물원·수족관법, 동물 복지는 어디에
  • 고다경 기자
  • 승인 2019.03.04
  • 호수 1489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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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공포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은 동물 복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지난 1월 국회에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한 이형주<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원·수족관법은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로 인해 제정된 법안이지만 동물 복지를 위한 조항은 모두 빠졌다”며 “동물원·수족관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계획만을 요구하는 등록 요건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현재 동물원이나 수족관 운영은 기본적으로 ‘등록제’로 이뤄지고 있다. 동물원의 경우 10종 50개체 이상의 동물을 전시목적으로 사육하는 시설이 등록 대상이며, 수족관의 경우 수표면 면적이 200㎠ 이상일 때 등록 대상이 된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등록 요건을 갖춰 시·도지사에 제출하기만 하면 누구나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운영할 수 있다. 기본적인 등록 요건으로는 △보유 생물 종 및 개체 수 목록 △시설 소재지 △전문 인력 현황 등이 있다. 이외에도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보유 생물의 질병 및 인수공통 질병 관리계획 △안전관리계획 △적정한 서식환경 제공 계획 △휴·폐원 시의 보유 생물 관리계획 등이 등록요건으로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시설 운영이나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만을 요구할 뿐이다. 이로 인해 동물 전시 시설 측의 임의적인 기준에 따른 자료 제출로 이어질 수 있어 동물 복지가 보장된 환경을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등록 요건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사후 검증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이 대표는 “검증시스템 미비로 인해 전문성이 없어도 누구나 동물원이나 수족관 운영이 가능하다”며 무분별한 동물원 및 수족관 시설 난립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추상적인 사육 환경 및 관리 기준
추상적인 동물 사육 환경이나 관리 기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동물원·수족관법 제6조에 따르면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운영하는 자는 보유 생물에 대해 각 종의 특성에 맞는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적정한 환경이 제공되기 어렵다. 이 대표는 “종별로 생태적 습성이 달라 적정한 환경에 대한 기준이 다른데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물을 사육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못한 사례로는 △수의학적 관리가 미흡해 질병에 걸린 사례 △대형 동물을 좁은 철창에 전시하거나 작은 동물을 아크릴 상자 안에 담아 전시하는 등의 사육면적이 협소한 사례 △흙을 파야 하는 동물을 새장에 전시하거나 사회화가 필요한 동물을 홀로 전시하는 등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동물원이라고 보기 힘든 유사동물원
최근 다양한 형태로 동물들을 전시하는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관람객이 동물과 직접 접촉하는 체험동물원이나 교육시설, 상업시설 등으로 동물을 옮겨 전시하는 이동동물원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시설은 동물원의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유사동물원이라 불린다. 이 대표는 “동물원의 현대적 의미는 동물을 관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과 교육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이동동물원이나 체험동물원은 열악한 환경 속의 동물을 단순 관찰하는 비정상적인 전시 형태”라고 전했다. 실제로 제대로 된 사육 시설 없이 실내에서 집약적으로 동물들을 기르거나 동물들이 이동장에서 생활하며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시설이 많다. 더욱이 유사동물원은 관람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뤄져 안전이나 위생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이에 대한 규제나 관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최소한의 동물 복지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윤익준<부경대 법학연구소 환경법전공> 교수는 “유사동물원이 운영되는 형태는 동물원의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며 “야생동물 거래 규제나 개인 소유 제한 규정 등을 통해 유사동물원은 점진적으로 근절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 복지를 보장하는 제도의 필요성
이런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요건만 충족하면 아무나 운영할 수 있는 등록제는 비상식적인 제도”이며 “동물 전시시설은 일반적으로 금지된 것으로 보고 일정한 기준과 목적에 근거해 허가하는 방식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 역시 “허가제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며 허가제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내놓았지만, “도입 이전에 위 제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허가제로 전환했을 때 남겨진 동물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고 무엇보다 법리적으로 타당한 법률 개정안이어야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동물원 운영과 관련한 법이 있는 영국, 미국 등의 국가는 모두 허가제나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다.

검사관 제도 또한 동물들의 복지를 보장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검사관 제도는 전문성을 지닌 검사관이 등록요건 심사 절차를 통해 동물원 및 수족관 운영 여부를 결정하고 정기적으로 운영 관리 기준에 대한 검증을 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수백 수천 종의 동물마다 구체적인 운영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아주 기본적인 지침만 설정하고 세부적인 사안들은 전문적인 검사관을 통해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월 환경부는 동물원 전문검사관 제도를 추진함으로써 동물 복지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검사관 제도는 의미가 있는 제도이지만 검사관 자격에 대한 기준이나 권한 부여의 정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이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허가제는 사람으로 예를 들면 최저임금제와 같은 최소한의 복지 기준”이라며 “행정적이나 상업적 측면에서 개정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시 동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동물원의 목적에 걸맞는 동물 복지 실현을 위해 점진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물 전시 시설 관계자들의 인식뿐만 아니라 관람객 입장에서도 열악한 동물 복지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도움: 윤익준<부경대 법학연구소 환경법전공> 교수
이형주<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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