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우수상] 월향(月香)
[2018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우수상] 월향(月香)
  • 정승윤<공대 융합전자공학부 14> 씨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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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안 팔 거라구, 몇 번을 말해야 아는겨!”

거실에서 또다시 할아버지의 핏대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서 컴퓨터로 영화를 보던 나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방 문틈이 빼꼼하게 벌어져 있었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문틈을 닫았다. 그러나 호통은 문을 닫아도 여전히 방 안으로 밀려들어와 영화 주인공이 내뱉는 대사 속에 섞여 들어만 갔다. 집이 계시면 자꾸 아버지가 내려가시려고 무기를 지금 버려라 내가 내 집 간당께는 느이들이…….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난 조용히 영화 볼륨을 줄였다.

“그리구, 내가 자주 감만? 여태껏 몇 개월을 못 가봤응게. 왜 고걸 못 가게 하는 것이여.”

“저희가 바빠서 못 데려다 드리잖아요. 건강도 안 좋으신 분이 왜 자꾸 가신다고. 지난번에도 혼자 내려가신다고 고집피우시다가, 마을 앞에, 응? 그, 고개언덕에서 혼자 구르시고. 근처에 유미네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못 보셨으면 큰일 날 뻔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벌써 세 달 전이었다. 그 때도 할아버지께서 시골집에 내려가신다는 걸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일이 바빠서 데려다 드리지 못하는 데다,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혼자 가셨다가는 혹여나 쓰러지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불만이신 듯 며칠을 부루퉁하게 계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빈틈을 잘 찾아내셨다. 아버지는 출장 중이셨고, 어머니도 가게 일로 주말에 집을 비우셨던 그 날. 수험생인 승혁이는 학원에, 시험 기간이었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느라 새벽별만 보던 그 때 할아버지는 홀로 무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셨다.

시골집은 무주터미널에서 내린 뒤에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사십 분, 거기에서 또 걸어 산길 사십 분을 올라가야 하는 산골마을. 내가 발 빠르게 걸어도 이십오 분은 족히 걸리는 그 가파른 언덕길을 할아버지는 굳이 오르셨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흙길을 한 발 한 발 내딛으셨다. 흙길은 젖어 부스스하게 일어나 있었고, 할아버지의 세월을 담은 다리는 그 느지막한 발걸음이 무색하게 부서지는 흙길을 따라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렸다.

“작년에도 몇 번이나 입원하고, 퇴원하고 하셨으면서, 얼마나 됐다고 올해도 또 그러셨잖아요. 정든 집이 그리운 건 알겠지만 이제 건강 챙기실 때도 됐어요. 같이 오래 있고 싶은 아들 마음도 좀 알아주세요.”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영화소리가 겹쳐 웅웅거렸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다보지 않아도 그 불만 가득하신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계실 게 훤했다. 컴퓨터 화면에서는 주인공과 악당이 총을 쏘며 화려한 액션씬을 펼치고 있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영화를 껐다. 잠시 발을 동동거리고 있으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또 지팡이 들고 집 앞 공원으로 휘적휘적 산책 나가셨겠지.

그 날 저녁식사는 간만에 온 가족이 모였음에도 조용했다. 식탁은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아그작거리며 김치가 씹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밥그릇은 영 줄지를 않았다. 내 밥그릇이 반 쯤 비어갈 땐가, 승혁이가 계란말이를 집다가 한 마디 꺼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오늘? 형, 오늘 분위기 왜 이래?”

나는 머리를 굴렸지만 머리에서는 명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어, 너 다음 주면 모의고사라 신경 쓰일까봐. 너 집에서 밥 오랜만에 먹는 거잖아.”

고작 생각해낸 거라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승혁이는 내 변명에 별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 그래? 어우, 다들 고맙긴 한데 괜찮아요. 사설 모의고사라 크게 안 중요하거든.”

승혁이의 한 마디 끝에 식탁에는 다시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퍼졌다. 무거운 분위기에 목이 막혀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간신히 밥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느 아버지가 시골집을 팔고 싶으다구 하신다.”

할아버지가 무게를 깨셨다. 동생은 눈치가 없었다.

“응? 왜요? 나는 가끔 시골집 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별도 보고 하면 좋든데. 왜, 작년 가을 때랑.”

“거 봐라. 애들도 좋다잖냐.”

할아버지가 밥을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한숨을 찬찬히 내쉬시는 게 느껴졌다. 눈치를 보던 나는 식탁 밑으로 승혁이의 허벅지를 쿡, 찔렀다. 그제야 승혁이는 분위기를 살피더니 아차 싶다는 표정을 한 채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식 씹는 소리가 멈췄다. 숨소리가 공간을 메우자 잠깐의 정적이 식탁을 쓸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탁, 하는 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공기가 더 흔들리기 전에 어머니가 재빠르게 분위기를 가로채셨다.

“아버지, 그럼 집은 안 파셔도 되는데, 자꾸 혼자 내려가시려고 하지만 말아주세요. 저희가 가끔이라도 모시고 다닐 테니까. 승혁이 너도 할아버지 얼마 전에 시골 내려가시다가 다치신 거 알잖아.”

“그러믄. 다음 주에 같이 내려가 줄 수 있는겨?”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다 말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셨다. 고민에 잠긴 아버지의 표정이 보였다. 사정이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못 가게 한다 한들 안 가실 할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표정이 대답을 대신했다. 어머니는 그 표정을 읽으셨다.

“다음 주는 조금 바빠서 그런데, 혹시 그 다음 주는 안 될까요, 아버님?”

“안 되야. 그 다음 주는 너무 늦여. 보름이 며칠 안 남았는디.”

어머니가 불안하게 식탁을 톡톡 두드리시다 나를 한 번 바라보셨다.

“승윤이가 같이 내려가 드리면 되겠다. 그치?”

“승윤이가아?”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예상치 못한 복병에 당황해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눈은 지금 답을 줘야 하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짧게 끄덕이셨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 그러죠 뭐. 종강해서 시간도 많은데.”

“그려어?”

내 말 한 마디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언제가 시간이 되나암.”

“저 아무 때나 다 돼요. 아, 내일은 약속 있어요.”

“그믄 내일모레 괜찮은가? 한 사흘만, 아녀. 이틀만이라두.”

고개는 끄덕거렸지만 내일모레면 빠듯했다. 게다가 찜통 같은 더위에 시골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산골이라 서울보다 시원하다고는 해도 여름은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한 대로 머물기는 힘든 곳이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흘도 괜찮아요.”

“그려어.”

할아버지는 그제야 안심하신 것처럼 숟가락을 드셨다.

할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신 지 이 년 하고도 반이 지나갔지만,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시골집에 가신다고 고집을 부리신 건 아니었다. 삼 년 전 여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마친 후 홀로 남으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적극 주장하셨다. 아버지는 고민하셨다. 어머니가 가게 일까지 하면서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면 건강을 해치실까 우려하셨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집안일이야 애들이 도우면 되지. 애들도 이제 다 컸잖아. 그리고 조금 더 힘들면 어때. 당신, 부모님이랑 20년이 넘도록 떨어져 살았으면 됐지, 얼마나 더 떨어져 지낼라구? 계실 때 잘하란 말야.”

사 남매 중 막내였던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에게도 물어볼까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큰고모와 작은고모는 이미 손자를 볼 나이가 다 되어 가시고, 큰아버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할아버지를 모시냐고. 홀로 남은 늙은이는 외롭다고, 더 홀로 계시게 할 수 없다고. 혼자 있는 사람은 더 빨리 늙어서, 남은 날이라도 더 오래 뵈어야 한다고 하셨다. 자주 뵈는 것 만한 효도가 없다며.

어머니는 아마 외할머니 생각이 나셨을 게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가 5살 때였나, 6살 때였나.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정확한 이야기는 전해 들었을 뿐이다. 지병이 있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정하시던 외할아버지도 조금씩 기운을 잃으시다 금세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시절 참 많이 우셨다. 어머니가 직접 우는 걸 본 기억은 없지만, 자다 한두 번씩 뒤척일 때면 항상 축축이 젖어 있던 어머니의 베개가 기억난다. 그 때는 몰랐다. 우리 어머니는 항상 강한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가 우신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삼 년 전 겨울에 서울로 올라오셨다. 할아버지는 좋아하셨다. 걸어서 코앞이면 대형마트가 있어 좋다 하셨고, 보일러를 따로 틀지 않아도 온수가 항상 나온다며 좋아하셨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 며느리, 손주들 얼굴 매일 볼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늦은 나이셨지만 근처 지역문화센터에서 꽃꽂이도 배우시고 배드민턴도 치셨다. 행복해 보이셨다.

재작년 초였다. 할아버지가 오신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가던 날, 사과가 드시고 싶으시다던 할아버지는 마트에 가서 사과를 좀 사오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오시지 않으셨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인근 대학병원이었다. 고혈압과 더불어 지병 때문에 급작스레 쇼크가 와 쓰러지셨다고 했다. 의사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사람이 많은 시가지라 곧바로 응급실로 모시고 올 수 있어 다행이다. 사나흘 간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시면 건강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을 거다. 우리 가족은 가슴이 철렁하긴 했어도 안심했다. 그러나 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퇴원하신 할아버지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시고 또 쓰러지셨다. 그 후로도 쓰러지고, 입원하시고, 또다시 쓰러지시기를 반복하셨다. 이대로 다시는 일어서실 수 없을 것처럼. 그러나 할아버지는 일어나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산책을 하셨고, 꽃도 보러 다니셨다. 작년 여름이 다가올 즈음 할아버지는 다시 배드민턴을 치실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셨다.

돌연 할아버지가 시골집을 가야겠다고 말씀하신 게 그 때부터였다. 처음 한두 번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 내려가셨었다. 그마저도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했었지만. 이후 아버지의 회사 일이 바빠져 시골을 내려갈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자 할아버지는 혼자서라도 시골집에 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당연히 언제 또 쓰러지실지 모르는 할아버지를 혼자 가시게 둘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달마다 꾸준히 시골에 내려갈 수 있냐 여쭤보셨고, 지난 설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갈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다 세 달 전, 할아버지는 변을 당하셨다.

출발 당일 아침, 나는 방학인 것 치고는 이례적으로 일찍 일어났다. 피곤한 눈을 애써 부여잡고 짐을 싸기 위해 학교 갈 때 쓰던 책가방을 들었다. 방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계시던 어머니가 으름장을 놓으셨다.

“가방이 작아 보이는데, 옷 넉넉히 챙겨. 거기도 산이라 밤에는 추워.”

할아버지가 지난번에 결국 못 가셨으니, 사람 발 제대로 닿은 지 벌써 반년이 넘은 집이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세탁기도, 냉장고도, 선풍기도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불이나 켜지면 다행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울 거다.

나는 그 으름장에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뭐라고 더 대꾸해 봤자 잔소리만 늘어날 테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불만이셨던 건지, 걱정이셨던 건지. 내가 짐을 싸는 걸 보다 못해 옆에서 직접 짐을 싸기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진작에 어제 좀 짐 싸 놓으라니깐. 일을 꼭 이렇게 만들어서. 혹시 모르니 카디건도 챙기자. 또 보조 배터리도 한 개 더 챙기고…….”

‘혹시 모르니’로 시작된 짐 싸기는 결국 커다란 여행용 가방 하나와 배낭 하나를 꽉 채우는 걸로 끝이 났다. 나와 어머니는 가방을 가만히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어디 전국여행이라도 가요? 다 쓸 데가 있을 거야, 이 자식아.

“이야, 오늘 할아버지 좀 멋있는데요?”

승혁이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연노랑 셔츠에 구두를 신으시고 평소에는 잘 쓰시지도 않던 하얀 중절모까지 쓰고 계셨다.

“우리 손주랑 오랜만에 가는 건디. 늙수그레하니 나가면야 안되지, 허허.”

할아버지는 차려입은 모습이 어색하신 듯 멋쩍게 웃으셨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에어컨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머리 위로 에어컨이 한 번씩 지나갈 때만 시원했고, 그 외엔 옆 사람에게 전해오는 열기로 몸이 뒤틀렸다. 숨 막히는 공기에 문득 시골집에서 맞던 산바람이 아른거렸다. 생각해 보면 작년 가을에 가족들끼리 다 같이 시골집에서 바비큐를 해 먹은 이후로는 처음이다. 지난 설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잠시 다녀오신 게 다였다. 어릴 땐 참 자주 다녔었는데.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짚고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 계신 할아버지가 걱정이었다. 한여름의 더위 먹은 지하철 안은 자리양보를 잊은 지 오래였다. 무조건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나 역시 어르신을 보고도 모르쇠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되남?”

“조금만 더 가면 되요. 10분 정도. 많이 힘드세요?”

“아니여. 그냥 궁금해서 그려. 혹여 지나치지는 않겄지?”

할아버지가 지하철 내 전광판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몇 달 전 할아버지는 홀로 지하철을 타고 길을 묻고 물어 그렇게 터미널까지 가셨을 테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주지 않은 자리 때문에 지팡이로 간신히 버텨 서 계시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자리를 무조건 비켜드리겠다 약속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다 왔어요. 여기서 내려야 해요. 저기요! 좀 지나가겠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역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몸을 밀어내듯 지하철에서 내리니 인파에 몸이 이리저리 떠밀렸다. 발걸음이 느린 할아버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좀처럼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나 역시 커다란 가방 때문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빠르게 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 한참 만에 터미널 쪽으로 벗어나고 나니 숨이 좀 트였다. 예매했던 버스 티켓을 발급받고 보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걸음이 느리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려면 일찍 나가라는 어머니의 잔소리 덕분이었다.

우리는 버스 승차홈 앞 의자에 앉았다. 버스는 아직 터미널에 들어오지도 않은 듯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도, 내려 다른 곳으로 향하는 사람도. 늘 보던 풍경이지만 새삼 낯설었다. 우리나라에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왜 이렇게 바쁘게 움직일까 다들.

버스가 들어온 후 우리는 짐을 싣고 자리에 앉았다. 기사아저씨가 인원을 확인했다. 곧이어 버스가 부릉거리며 몸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혔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가는구나. 이제야 감만. 할아버지가 한 손에 모자를 든 채 중얼거리셨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창밖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금세 잠이 드셨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터미널까지 오시는 길이 피곤하셨을 게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에어컨 바람을 줄이고,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할아버지 가슴에 덮어 드렸다.

나는 휴대폰을 잠시 두드리다 곧 눈을 돌렸다. 할아버지 건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연둣빛이 살짝 섞인 초록빛과 군데군데 흰 덩어리가 박힌 하늘빛이 창을 가득 메웠다. 오랜만에 보는 푸름을 팔걸이에 기대 잠시 감상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려 도로를 따라 돌자 햇빛이 강해졌다.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해가 방해할 것만 같아 커튼을 치고 나도 이내 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땐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가고 있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 창밖을 보고 계셨다. 오랜만에 오신 고향에 긴장하신 것인지, 조바심이 나시는 건지 손으로 모자챙을 계속 뜯으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7월의 뜨거운 열기가 훅, 들어찼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살인적인 더위에 문득 할아버지가 걱정돼 뒤를 돌아보니 이미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꺼내 끼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씨익 웃어 보이셨다.

“선글라스 어뗘? 잘 어울려?”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폭소를 터트렸다. 오른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자 할아버지도 엄지를 마주 올리셨다.

“이것이 굳이지, 굳. 허허허.”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날이 덥기도 하고, 점심시간을 생각하자 지금 출발하면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너무 애매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 지금 출발하면 좀 늦을 것 같은데,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할아버지는 망설이셨다. 빨리 집에 가보고 싶으신 눈치였지만, 강한 햇빛 탓에 걱정이셨던 것 같다. 더불어 집에 간다고 한들 바로 무얼 먹기는 힘들게 훤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시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려. 여그 내울 건너믄 앞에 국수집 있응게, 한 그릇 하고 올라가자잉.”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5분 남짓 걸어 도착한 곳은 우동집이었다. 여름이라 냉모밀을 팔고 있기에 두 그릇을 주문했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에서 티슈를 몇 장 뽑아 땀을 닦으시며 창밖을 바라보셨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냉모밀이 테이블 위에 얹혔다. 냉모밀은 금방 사라졌다. 마침 우동집 앞에 카페가 있기에 아이스커피를 두 잔 사 가방에 넣고 마을버스에 올랐다. 마을버스에서도 할아버지는 창밖만 내다보며 모자챙을 뜯으셨다. 이내 시간이 흘러 마을버스는 속절없이 나와 할아버지를 정거장에 두고 떠났고, 우리는 산길을 올랐다.

그날따라 날이 유달리 더웠던 것 같기도 하다. 정오에 비해 햇볕은 덜 뜨거웠지만 땅에서 오르는 열기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오죽하랴. 등에 멘 가방은 땀에 젖은 채 어깨를 짓눌렀고, 여행가방은 포장되지 않은 흙길에 사방으로 튀어 팔이 뻐근했다. 아침에 짐을 잔뜩 싸 올린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거기에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오르는 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전에는 차를 타고 와서 가까이 느껴졌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끈적이는 지침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뒤따라오시던 할아버지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신 채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한 걸음씩 오르셨을 뿐이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는 속도 없이 울기만 했다.

20분정도 지났을 때였나, 더위에 지친 나는 중턱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잠시 쉬어 가자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잠시 망설이셨지만 날이 더우셨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는 나무 밑에 앉아 가방에서 이미 다 녹아 미적지근해진 아이스커피를 꺼내 나누어 마셨다. 산골이라 그나마 바람이 불어 내리쬐는 햇볕만 없어도 버틸 만했다.

“하이고, 되다.”

할아버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기는 들었나 뵈, 내가.”

산바람이 할아버지의 옷소매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언덕 아래 밭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고 위로하는 건지. 머리 위에 서 있던 나무도 바람에 스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나는 말을 돌렸다.

“이 나무는 뭐에요?”

“무신 나무?”

“여기, 머리 위에 있는 이 나무요.”

나는 손가락으로 우리가 기대고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이거슨, 보자, 느릅나무구먼.”

“느릅나무요? 와, 나무가 엄청 크네요.”

“그러엄. 느 애비 태어날 때부터 여그 서 있던 나문데.”

할아버지가 나무를 바라보며 아련한 미소를 지으셨다.

“마이 늙었구나, 이 나무도.”

우리는 잠시 그렇게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땀이 어느 정도 식자 할아버지는 남은 커피를 다 들이키시고 지팡이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셨다.

“자, 쉴 만큼 쉬었디야. 다시 올라가자.”

그 때였다. 점점 가까워지던 경운기 소리가 멈추더니 누군가가 외쳤다.

“아이고, 종민이네 애비 아녀?”

경운기에 타고 계시던 분은 근처 살던 산이네 할아버지였다. 오랜만에 뵀지만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양손에 목장갑을 낀 모습이 정정해 보이셨다. 산이네 할아버지를 뵌 할아버지는 눈주름이 자글자글해지도록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셨다.

“이것이 누구여! 아직 숨은 붙어있었구만.”

“어허이, 말이 씨가 된다고. 옆에는 막내 손주네 그려? 그런디, 설마 여그까지 걸어온 것이여? 아이고, 이 사람아. 이 날씨에 여그를 걸어서 온다니 미쳤네, 미쳤어. 말을 혔으면 델러 왔을 텐디!”

그렇게 우리는 한 소리 아닌 소리를 듣고 운 좋게 경운기에 얻어 타게 되었다. 경운기는 나쁘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빛이 그대로 얼굴을 찔러대긴 했지만, 산바람을 맞으며 덜컹거리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다만 남은 거리도 올라온 거리 못지않았을 텐데, 털털거리는 경운기로도 5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는 게 조금은 허무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연락해서 부탁드릴 걸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산이네 할아버지는 한사코 괜찮다는 우리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시고, 짐까지 안으로 옮겨 주시고야 떠나가셨다.

오랜만에 들른 시골집은 먼지만 조금 쌓였을 뿐, 바뀐 것은 없었다. 그러나 느낌이 묘했다. 잠잠한 것이 마치 집이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거실 불을 켜봤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오고 있었다. 냉장고도 퀴퀴한 냄새가 올라온다 뿐 돌아가고는 있었다. 물도 온수를 제외하면 잘 나왔다. 대충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작은 방 구석에 있던 선풍기를 가져와 틀었다. 집안에 바람이 도니 한결 나았다. 그 사이 동네에선 한 차례 인사가 다녀갔다. 산이네 할아버지가 발 빠르게 소문을 내고 다니신 모양이었다. 먹을 밥은 있냐는 말과 함께 쌀이며 김치며 갈비찜에 반찬 몇 가지를 받아들었다. 배웅이 끝나고 할아버지와 나는 간단하게 집을 정리했다. 내려앉은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았다. 창문을 열고 구석에 앉은 거미줄을 쳐냈다. 창고에 있던 텐트형 모기장을 꺼내 거실에 깔았다. 밥솥과 접시를 닦고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잠들어 있던 집에 조금씩 숨이 들었다.

그 즘까지도 후텁지근했던 바람이 조금씩 시원해졌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나와 이마의 땀을 한 줌 훔치고 마루에 앉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살며시 붉은 기를 띄고 있었다. 하늘을 가만히 보시던 할아버지는 부채질을 하던 내 등을 조용히 토닥여 주셨다. 늙은이 때문에 고생이 많누, 우리 손자. 할아버지가 조용히 중얼거리셨다. 괜스레 내색을 하기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도 어색해 괜한 갈비찜 탓을 대며 부엌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산골의 밤은 금세 찾아왔다. 조금씩 어둑어둑해지나 싶더니 어느새 가로등 불빛만 간간이 비출 뿐, 길거리엔 빛이라고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일찍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장롱을 열었다. 묵은 이불을 꺼내 털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으셨다.

“이따 혀고, 여 와서. 모기망 좀 깔자.”

할아버지와 나는 거실에 깔아 두었던 모기장을 들어 마루에 옮겼다. 여그 쪼매 기다려라잉. 할아버지는 나를 마루에 앉혀두시고는 무엇이 그리 급하신지 종종걸음으로 부엌문 뒤로 사라지셨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밤공기를 맡았다. 하늘에는 어느 새 둥그런 보름달이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저녁에 먹다 남은 황태볶음과 갈비찜 몇 조각이 쟁반에 담긴 채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왔다. 쟁반을 받아든 나를 두고 할아버지는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금세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오른손에는 약주 한 병이, 왼손에는 소주 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 술 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으응, 괜찮여.”

할아버지는 끄응 소리와 함께 약주를 따셨다. 퐁. 십 년도 넘은 약주가 참았던 숨을 내뿜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의 손이 내 잔에 약주를 한 잔 채워내었다. 이어 숨 돌릴 새 없이 할아버지의 잔으로 가던 약주 병을 재빨리 받아들었다.

“허허, 그랴. 간만에 우리 손주가 주는 잔 한 번 받아 보자.”

할아버지의 멋쩍은 웃음에 조심스레 잔을 따라내었다. 술을 잔뜩 인 잔은 부딪히며 맑게 우는 소리를 내었다. 술이 넘어가고 남은 자리엔 쌉쓰레하니 달콤한 도라지 향이 남았다. 할아버지를 따라 올려다본 밤하늘은 은하수와 보름달이 가득 채워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하늘 아래서 술을 한 잔 하고 있자니 낮에 했던 무더운 고생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 진짜 예쁘네요.”

“암만. 서울서 보는 거랑은 아예 다릉게.”

할아버지가 약주병을 잡으셨다.

“한 잔 더 받을랑가?”

나는 흔쾌히 잔을 들었다. 술이 꼴꼴거리며 잔에 차올랐다. 병을 받아 한 잔 따라드리고 있으니 문득 묻고 싶어졌다.

“할아버지.”

“그랴.”

할아버지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왜 꼭 여기에 오려고 하셨던 거예요?”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잔을 드셨다. 잔을 마주 들어 한 잔 넘겼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손을 드셨다.

“저것 때문이여.”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따라 눈이 향한 곳은 밤하늘이었다. 할아버지는 갈비 조각을 집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달……. 여그서 보는 보름달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난 설에 한 번 오셨잖아요?”

“설은 안되야……. 달이 안 뜨니께.”

할아버지가 갈비를 오물거리며 말씀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차 싶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 그믐에 달이 뜰 리가 만무한데. 할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셨다.

“지대루 말허면, 달 내음이 그리웠는디.”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키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그런디 지금은 그 내음이 잘 안 난디야.”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다시금 잔에 약주가 차올랐다. 병을 받아든 나는 병을 기울이며 물었다.

“예전에는 달에서 냄새가 많이 났어요?”

할아버지는 몇 번 숨을 고르시기만 하실 뿐 대답이 없으셨다. 연거푸 두 잔을 황태볶음 몇 가닥과 함께 드신 이후에는 손으로 옷깃을 지근거리며 뜯고 계실 뿐이었다. 술의 알알한 맛이 도라지 향에 묻어갈 즈음,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느 애비가 태어날 즈음이었다.”

원래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낳을 계획이 없다고 하셨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딸 둘과 아들 하나도 벅차셨다고 했다. 그러다, 덜컥 늦은 나이에 아버지가 들었다. 막내아이가 든 것은 분명히 기뻐할 일이었지만, 마냥 기뻐하실 수만은 없으셨다. 집안 형편이야 다음 치더라도 할머니가 걱정이셨다. 요즘이야, 서른 넘어 아이를 낳는 일이 흔하다 해도, 그 시절엔 서른 중반이 넘으면 노산이었다. 할머니 배가 불러올수록 걱정은 태산이었다만, 병원도, 의료시설도 부족한 시절이니 뭘 할 수 있었겠는가. 할아버지는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다고 했다. 혹여나 아이를 낳다가 할머니가 큰일이 나지는 않을까, 또 아이는 괜찮을까 싶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산에서 몸에 좋다는 거 따다 먹이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대접에 물 받아 놓고 비는 수밖에 없었단다.

몇 달이 지나 아버지는 세상에 무사히 나오셨다. 고비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할머니도, 아버지도 건강했다. 그렇게 고생에 고생을 더해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아들이 보름달을 닮아 동그랗고 뽀얀 것이 얼마나 예뻤던지. 무슨 일이 있던지 모르지만 그 날 하늘에는 보름달이 떴더랬다. 할아버지는 너무나 감사해 눈물을 흘리며 아이와 할머니를 꼭 안으신 채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님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단다. 그 후로도 할아버지의 기도를 들어주신 달님께 감사하며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보름달이 뜨는 날 가족이 다 같이 마루에서 달을 보며 맛있는 걸 먹었더랬다.

“여 마루서. 밥도 묵고, 술도 한 잔 했었지. 아직두 우리 막둥이가 쪼매할 때 여그서 뛰어댕기든 그 모습이 아른, 하네. 아그들은 뛰 댕기고, 할매랑 마당서 오이나 따 가, 걸루 한 잔 하고. 그러믄, 그 때 달 내음이 그릏게 좋았네. 어디 다른 거 비교할 수가 읎이.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서울서 한번 그러구 나니. 그 내음이, 향이 다시 꼭 맡구 싶었디야. 늦기 전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통 어릴 적 이야기를 하지 않던 편이셨다. 나는 손가락으로 황태 조각을 찢으며 물었다.

“그래요? 아빠는 할아버지가 서울이 답답하셔서 그렇다고 하시던데요.”

“그랬겄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바라보셨다.

“느 애비는…… 머리가 좀 큰 담부턴 여 산골을 싫어혔어. 지금 돌이켜 봉게 여그가 싫었던 건지, 여그서 지낸 그 가난을 싫어한 건지 모르겄다. 밥이 읎어 겨우내 먹던 고구마도 싫어혔고, 다 헤진 형 누나들 책 물려받는 것도 싫어혔고, 느 할매가 다른 집 밭으루다 발품 팔러 다녔던 것도 지독하게 싫어혔던 놈이여. 항상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어 혔어. 이 골짜기서 나가겠다고 죽도록 공부만 했었지. 아주 꿈도 크고 독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여그에 오고는 싶겄냐? 달 향을 생각하고 싶겄냐.”

다 내 탓이네. 할아버지의 한숨소리에는 술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 냄새가 내게 괜한 걸 물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여기 오면 좋은데요. 밤하늘도 진짜 예쁘고. 서울 어디서 이렇게 밝은 달이랑, 이렇게 은하수랑 보겠어요.”

할아버지는 나지막이 웃으시며 내 등을 두드리셨다.

“어이구, 우리 손주가 아들보다 낫네. 허허허.”

할아버지는 손을 뒤로 쭉 뻗어 기대 하늘을 바라보셨다. 달 내음이야, 우리 할매가 제일 잘 알았는디. 마당에 피워둔 모기향 불빛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말이 없어 조용해진 마루에 귀뚜라미만 목소리를 얹고 있었다. 귀뚤귀뚤. 처량한 한숨만 같은 그 소리가 가슴에 꾸욱, 얹혀 무거웠다.

“고만 들어갈까?”

할아버지가 약주 뚜껑을 닫으시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주무시게요?”

“여그 더 있어서 뭐 하겄냐. 인쟈 너도 자야 허고.”

할아버지는 허리를 가볍게 두드리셨다. 나는 앉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산골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 가운데 보름달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싱글거리고 있었다. 이런 장경을 두고 흔히 밤하늘이 쏟아질 듯하다 하던가. 이런 날이면, 멀리서 보러 와준 할아버지께 고마워서라도 하늘에서 내려와 술 한 잔 따라줄 만하건만. 달은 매정하게도 쏟아지기는커녕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빛날 뿐이었다.

그런데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마치 어딘가에 붙잡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는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요.”

“왜?”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요, 라고 대답하려다 문득 그러지 않았다.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밤하늘이 그저 예뻐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에 더 있고 싶었다. 어디에선가 이곳에서 뛰어다녔을 어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조금만 더 있자고 달이 내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눈을 마주친 보름달은 내 눈을 놔주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달이 자꾸 꼬드겨서요.”

나도 모르게 뱉은 대답이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서 계셨다. 한참을 그렇게 서계시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셨다. 밤 중 마당에 뜬금없는 할아버지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어찌나 크게 웃으셨던지 웃음소리에 놀란 건넛집 개가 놀라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 참.”

할아버지는 한참을 웃으시고는 자리에 다시 앉으면서 말씀하셨다. 약주 뚜껑을 돌리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알쏭달쏭했다.

“예전에 여서 술을 마시믄, 항상 마지서 할매가 그랬네. 딱 한 잔만 더하자구, 매번 그랬는디.”

할아버지가 잔을 드시기에 한 잔 따라 드렸다. 할아버지가 약주를 주시기에 한 잔 받았다. 할아버지는 잔을 손에 쥐신 채 꽤 오래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찬찬히, 숨을 고르시며, 밤하늘을 보고 계셨다. 그런 잔잔함이 좋아 그대로 따라 하늘을 보았다. 천천히 말씀을 시작하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느새 들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여. 달이 꼬시는디 어쪄. 너도 그냐?”

할아버지의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미소가 배어나왔다. 삶에 내려앉은 눈꺼풀이 부드러운 물결무늬를 그렸다. 할아버지의 손이 잔을 한 잔 더 들어올렸다.

“낼, 서울 집으루 올라가쟈.”

“네? 사흘은 있자고 하셨잖아요.”

나는 놀라 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하루 더 있어도 좋은데. 날도 좋고…….”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달을 바라보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숨을 찬찬히 들이쉬시며 가만히 내 손을 쥐셨다. 돌아다본 할아버지의 눈이 은은했다. 긴 숨이 지나가고, 그 숨 끝에 할아버지께서 운을 떼셨다.

“이젠, 되얐다.”

그 한 마디는 고스란히 내게 들어왔다. 나의 말들은 나오지 않고 그 한 마디에 녹아들었다. 선선한 밤바람 사이 더 꼭 쥔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따뜻했다. 할아버지께서 내 쪽으로 눈을 돌리셨다.

“그러고 봉게, 그 때 기억이 날랑가? 느 쪼매할 때에 여 와가지고 유미네 강아지 괴롭히다가…….”

상기된 목소리가 마루를 채웠다. 바람이 산내음을 실어 왔다. 여름 은하수가 산골 밤하늘 한가운데를 메웠고, 구름 한 점 없어 가득 채워진 밤하늘은 내 눈을 메웠다. 어두컴컴한 시골집 마루 위에 가만히 내린 달빛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끝에서,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달 향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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