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가작] 할머니의 잉글리쉬
[2018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가작] 할머니의 잉글리쉬
  • 김나영<정책대 정책학과 16> 씨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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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영어를 잉글리쉬라 하신다
배운 것은 바로 써먹어야 하는겨!

할머니, 단어 열 번씩 쓰기가 숙제에요
주름진 손이 펜을 꾸욱 쥔다
마디마디 산맥이 생긴다
오름길 내림길
깊고 험준하다

소녀의 손에는
책가방 대신 호미가 들렸다
교실 대신 밭에서 흙을 만졌다
그 때 만진 흙은 산맥이 되었다

배움은 오라비의 것이었다
소녀의 몫은 남겨지지 않았다

허기진 위장을 가리고 싶었고
하늘 아닌 흙길만 쳐다보며 걸었다
소녀의 밥은 남겨지지 않았다

가장 배우고 싶은 건 영어였다
소녀가 묻는다
요게 뭔 뜻이다냐?
잊어져 가는 단어를 잡기 위해
그녀는 산맥을 오르고 내린다

알림장을 크게 써드리고
틀린 글자를 살며시 고쳐드렸다
오늘도 소녀의 산맥은 꿈틀거렸다
그녀에겐 산맥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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