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그리너스 FC의 녹색 돌풍을 꿈꾸다
안산 그리너스 FC의 녹색 돌풍을 꿈꾸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12.02
  • 호수 1487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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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완섭<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안산에 프로축구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안산 그리너스 FC’는 한대앞역에서 불과 두 정거장 떨어진 고잔역 인근의 ‘안산 와~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안산 유일의 프로축구팀이다. 20여 년간 안산의 대표 축구인으로 살아온 본교 체육학과(88) 출신의 임완섭 감독(이하 임 감독)은 지난 10월 안산 그리너스 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임 감독은 특유의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소통하는 리더십을 통해 안산 그리너스 FC를 ‘이기는 축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고자 한다. 도전의 연속이었던 그의 축구 인생. 안산 그리너스 FC에서 임 감독은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 안산 그리너스 FC 사무국에서 만난 임 감독의 모습이다.
▲ 안산 그리너스 FC 사무국에서 만난 임 감독의 모습이다.

한양대 축구부는 우승만을 원한다
운동을 좋아했던 임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부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노력만 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성실하게 운동에 임했다. 임 감독의 노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빛이 났다. 정교한 왼발 킥과 넓은 시야를 가진 미드필더로 정평이 나 있던 그는 17세 이하 청소년 축구국가대표팀(이하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는 서정원, 신태용, 유상철 등 당시 내로라하는 재능 있는 선수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와 경쟁했다. “당시엔 유니폼에 태극마크가 가슴팍에 새겨져 있었어요.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숙소에 걸린 유니폼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죠.” 임 감독은 해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부족함을 느끼기도, 대표팀 동료들에게 서로 배우기도 하며 성장했다.

1988년 본교 체육학과에 진학한 임 감독은 한양대에서 축구 선수로서 더욱 발전하고 강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양대 재학 시절 임 감독이 강도 높은 훈련과 엄격한 규율만큼이나 힘들었던 때는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무너져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다. “대학교 1, 2학년 때 전국 대회 준우승만 3번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한양대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준우승을 좋은 성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죠. 특히 비슷한 실력의 연세대, 고려대에 지는 걸 죽도록 싫어했어요. 그래서 4학년 때 고려대를 상대로 우승했던 전국대회 결승전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임 감독(맨 오른쪽)과 한양대 동료들은 1991년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고려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임 감독(맨 오른쪽)과 한양대 동료들은 1991년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고려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자기관리에 성실했던 미드필더
임 감독이 졸업할 당시 K리그는 구단이 선수를 지명하는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했다. 선수들이 원하는 구단에 갈 수 없는 데다가 계약금과 연봉 상한선이 터무니없이 낮아 프로축구팀이 지금처럼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 감독 역시 프로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유망한 미드필더로 인정받았던 그는 프로구단이 아닌 실업팀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당시에 은행팀에서 은퇴를 하면 은행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어요. 고질적인 부상도 있어 프로에 도전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죠.”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투철했던 임 감독은 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7년 만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은퇴의 결정적인 요인은 팀의 해체. 1997년 당시 IMF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민은행 축구단은 해체됐고, 30대에 들어선 임 감독도 자연스레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선수들을 다독여주는 지도자
팀의 해체와 함께 선수에서 은퇴한 임 감독은 지도자로 다시 축구계에 도전하기로 했다. 자비로 6개월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날 정도로 열정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은사의 부름을 받고 한양공고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임 감독은 한양공고와 한양중 등 유소년 축구계에서 무려 12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 이 프로에 진출해 좋은 모습을 보일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는 이명재 선수가 기억에 남아요. 선수랑 부모님은 미드필더로 뛰기 원했지만, 왼발을 잘 써 왼쪽 측면 수비수로 더 유망하다고 판단했어요. 설득 끝에 꾸준히 왼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했고, 지금은 울산 현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유소년 지도자들이 그렇듯이 내가 가르친 선수가 잘 되면 너무 기쁘고, TV에 그 선수가 나오면 자랑도 하죠.”

유소년 축구계에서 오랜 기간을 몸담았던 그는 2011년 대전 시티즌 코치를 시작으로 프로 축구계에 도전장을 내민다. 똑같은 축구팀이지만, 유소년축구팀과 프로축구팀은 천지 차이다. 그 차이는 경기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유소년 축구에선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해요. 하지만 프로는 달라요. 과정이 아무리 좋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도 패배하면 그 모든 게 의미가 없어져요.”

프로에 와서도 임 감독은 지도자로서 좋은 역량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수석코치로 재임한 안산 무궁화 축구단과 경남 FC는 각각 2016, 2017년에 K리그2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는 수석코치로서 선수들이 마음을 편하게 갖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게 잘 해주기가 어려워요. 선발 명단을 짜고 결과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석코치로서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기죽지 않도록 다독여줬어요.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을 때만큼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산의 축구인, 그리너스의 수장으로
지난 10월 1일 임 감독은 안산 그리너스 FC의 제2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했다. ERICA캠 출신의 아내와 22년째 안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임 감독은 2016년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서 수석코치로 재임하는 등 안산의 대표 축구인으로 활동해왔다. 성인 프로팀 감독 경험은 없지만, 중학교 축구팀부터 프로구단 수석코치까지 경력을 쌓으며 능력을 키워온 것도 강점이다.

이번 시즌 후반기에 취임해 6경기를 지휘하며 프로 감독 생활을 맛본 그는 다음 시즌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와 안산 그리너스 FC의 다음 시즌 목표는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저력의 팀으로 발돋움 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지면 관중석의 팬들이 박수를 쳐줘요. 그 박수는 위로의 의미죠. 저는 그런 박수보다는 승리에 대한 축하의 박수를 받고 싶어요. 적어도 지난 시즌보다는 더 많은 승수를 챙겨 중위권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입니다.” 임 감독은 또한 안산 그리너스 FC와 ERICA캠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모교의 후배들과 우리 팀이 점점 협력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축구구단 사무국 업무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팬으로 축구를 즐기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면 언제든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안산 그리너스와 ERICA캠이 함께 꾸준히 공유하고 접하다 보면 분명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축구 지도자의 삶을 ‘도전의 연속’이라 고 말했다. “지도자가 도전하지 않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이상의 발전은 힘들어요.” 축구 인생 내내 항상 새로운 도전에 임했던 그는 도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전자의 입장으로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임 감독과 안산 그리너스 FC. 그들이 내년 시즌 K리그에 일으킬 녹색 돌풍을 주목해 봐도 좋을 것이다.

▲ 많은 추억과 내면의 강인함을 얻었기에 한양대 입학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임 감독. 그는 “한양에 대한 자부심은 영원할 것”이라 말했다.
▲ 많은 추억과 내면의 강인함을 얻었기에 한양대 입학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임 감독. 그는 “한양에 대한 자부심은 영원할 것”이라 말했다.

사진 오수정수습기자sujeong5021@hanyang.ac.kr
사진제공: 안산 그리너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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