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보다 무서운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
정신질환보다 무서운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
  • 김종훈 기자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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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최근 실시한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만 18~64세 성인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26.6%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이 22.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43.1%(2015년 기준)나 캐나다의 46.5%(2014년 기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선입견이 더 강한 편견으로
이처럼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질병이지만, 이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국립건강정신센터가 실시한 ‘2017년 대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4%가 정신질환자가 일반인에 비해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소식이 이런 인식에 기름을 붓는다.

노성원<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미 국내·외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과 폭력행동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오히려 대부분의 환자는 본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살이나 자해의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최준호<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포비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며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 사건들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몸이 아프면 주변에서 위로와 걱정을 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정신질환에 걸린 경우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을 찍고 이들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소희<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정신질환자가 편견을 의식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직은 갖춰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과장은 “정신질환도 치료해야 할 병인데 ‘성격이 원래 그래서’, ‘나쁜 사람이라서’ 등으로 취급받는다”며 “이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 교수도 “성격 때문에 생기는 질환은 절대 없다”며 “실제로 이런 사회적 시선 때문에 병을 키워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편견이란 ‘벽’을 깨기 위한 노력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해결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이 과장은 “평소 꾸준히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을 해야 한다”며 “누구나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원에 찾아 상담받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최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와 함께 섞여 살며 선입견을 깨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기존의 정신질환 치료의 초점은 사회로부터의 격리에 맞춰져 있었다”며 “환자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사회로 돌아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낮추려는 여러 방면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011년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정신의학회)의 주도로 ‘정신과’를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했다. 그 배경에 대해 최 교수는 “‘정신과’라는 명칭 때문에 ‘정신병’만 다룬다는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개명을 통해 많은 의사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학과’ 사이에 있는 ‘건강’이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질병 이전 단계, 즉 질환이 발생하기 전부터 정신건강에 대해 총체적으로 개입하자는 취지”라고 답했다. 이때 총체적 개입이란 정신질환 수준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질환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면, 면담이나 상담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직접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정신건강 증진 사업’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정신의학회 특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 과장은 사업 배경에 대해 “진료실을 찾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을 통해 정신의학회는 지난 1년간 미혼 임신모 보호시설, 범법 청소년 보호시설 등 정신건강서비스를 누리기 힘든 곳과 전문의를 연결해 상담과 강의를 진행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공익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 30일 시행된 ‘정신보건복지법’의 취지와 내용을 홍보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광고를 제작했다. 이 광고는 정신질환자도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화와 공감이 필요해요
인식의 개선과 함께 전문가들은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과 터놓고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노 교수는 “정신질환은 전문가를 찾아 일찍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최 교수도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나 동료들과 지속적으로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 과장은 “대화와 공감도 중요하지만, 질환이 의심된다면 병이 심해지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움: 노성원<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소희<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최준호<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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