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백지 같은 나를 채운 검은 활자들
[취재일기] 백지 같은 나를 채운 검은 활자들
  • 정주엽 기자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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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엽<문화부> 정기자

신문을 조심스레 얼굴 가까이 옮긴다. 숨을 한 움큼 들이마셔 본다. 미묘한 잉크 냄새 그리고 종이 냄새가 난다. 오래된 헌책방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다. 왠지 모르겠지만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기분 좋은 고양감을 안고 가장 먼저 4면을 펼친다.

‘기사’. 한대신문에 들어오기 전 필자에게 기사란 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찾는 휴대폰 속 작은 활자들에 불과했다. 단지 좋아하는 스포츠 란이나 영화 잡지를 찾아보는, 딱 그 정도였다. 그런 필자가 왜 하필 신문사에 지원했을까. 아마도 ‘대학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막상 들어온 신문사는 이런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터뷰 10분의 녹취를 풀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고, 회사같은 독특한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겪었던 수습기자 시절이 그저 ‘몸풀기’ 정도였다는 것을 얼마 안 가 체감했다. 한 달 가까운 방중 회의 기간은 원하는 부서에 배정된 필자였음에도 견디기 버거울 정도였다. 특히 날선 회의에서 필자가 작성한 기획안들이 ‘비판’ 받을 때는 그것이 ‘비난’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견디기 벅찰 때가 많았다. 취재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인터뷰이가 구해지지 않아 직접 전화를 걸어 간곡히 인터뷰를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힘든 과정은 필자를 바꿔 놓았다. 사실 필자는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뚜렷한 색깔이 없는 ‘백지’에 가까웠다. 막연히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을 뿐, 하고 싶은 일이나 삶에 대한 나만의 뚜렷한 가치관, 철학이 없었다. 하지만 신문사는 이런 필자를 전보다 조금 더 빼곡한 내일의 ‘나’로 만들어줬다.

신문사 기획 회의를 하면 매번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기자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흔히들 기사를 중립적인 글이라 여긴다. 그러나 모든 기사의 기저에는 기자가 독자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기자가 주장하고 있는 핵심이 흔들린다면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다. 그만큼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의 뚜렷한 가치관이 중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곧은 가치관을 갖기 위해 필자 역시 많은 기획안을 쓰고 고치며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때론 발로 뛸 때도 있었다. 카메라와 함께 북촌 한옥마을을 누비고 사근동 골목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기사에 담고자 하는 내용을 눈과 렌즈에 먼저 담았다. 물론 그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기획안을 고치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고 체감했을 때, 비로소 ‘내 이야기’, ‘내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여러 경험을 하며 필자는 어느새 백지 같은 내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학기 필자는 아마 좀 더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에서 ‘한대신문’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신문사에서의 시간이 모두 끝난 후, 백지 같던 내가 검은 활자 그리고 잉크 냄새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만큼 필자가 성장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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