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졸업 못 해요, 원래 의미가 퇴색된 졸업 전시
돈 없으면 졸업 못 해요, 원래 의미가 퇴색된 졸업 전시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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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또는 그 이상의 대학 생활을 집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인 것 같아요.”, “예술대학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키운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는 김승균<디자인대 테크노프로덕트디자인학과 12> 씨와 익명을 요구한 예술대학 학생 A씨가 졸업 전시에 관해 한 말이다. 이렇듯 졸업 전시는 예술대학 학생에게 자신들의 성취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돈’에 묻힌 ‘졸업’의 의미
하지만 졸업 전시가 성취의 장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졸업 전시를 위해 소모되는 여러 비용은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간다. A씨는 “올해 졸업 전시를 한 선배는 작품 제작과 전시 준비에 4백만 원 넘게 사용했다”며 “다가오는 졸업 전시가 두렵다”고 말했다.

여러 예술대학 학생이 모여 학교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대학생 네트워크’(이하 예대넷)는 지난해 전국 예술계열 단과대 25개, 150개 학과를 대상으로 졸업 전시와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졸업준비금으로만 개인당 최대 1백70만 원을 추가로 지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예대넷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예술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졸업 관련 행사를 준비할 때, 졸업준비금을 지급한다’에 답한 비율은 62.1%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2018 테크노프로덕트디자인학과 졸업 전시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 씨는 “올해 졸업 전시는 개인당 졸업준비금과 개인 작품 제작 준비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연덕원<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등록금을 내는 것 자체가 학교에서 교육받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라며 “졸업 전시를 개최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학교가 부담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예술대학 학생에게는 졸업 전시가 졸업 필수 요건으로 지정돼있기 때문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대넷에 속한 158개 학과 중 150개 학과는 졸업 관련 행사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지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예술대학 학생 B씨는 “지난해 졸업 작품 심사에서 떨어져 졸업이 1년 미뤄졌다”며 “졸업 전시 준비를 2번 하다 보니 졸업에만 1천만 원 정도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졸업 관련 행사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정한 것이 의문”이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학교는 나 몰라라
이처럼 졸업 전시가 학생들에게 부담만 주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예대넷 공동대표 신민준<홍익대 회화과 13> 씨는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모든 비용을 학생이 사비로 충당한다”며 “작품 제작 시에 후배의 도움을 받고도 그에 따른 급여를 주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번 졸업 전시를 준비하며 1백만 원가량을 대출받았다”고 전했다. 신 씨는 “졸업 전시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지정하고도 학교 측의 지원금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학교 차원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예술대학 학생들은 등록금 사용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신 씨는 “매 학기 실험실습비로 편성되는 금액이 전체 등록금의 5% 내외임을 고려할 때, 실험실습비가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다”며 “등록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예술대학의 경우 연평균 등록금은 779만6천4백 원으로 전체 대학 등록금 평균보다 약 43만 원 정도 더 비싸다. 하지만 예대넷이 지난 9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지역 39개 예술대학 중 실험실습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 대학은 4군데이고, 그마저도 1인당 2만7천 원부터 15만7천 원 수준에 불과하다.

모두가 즐기는 졸업 전시를 위해
학생에게 부담 없는 졸업 전시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학교가 졸업 관련 예산 배정을 확대해야 한다. 서울 지역 39개 예술대학 중 졸업 관련 예산 배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학은 5군데이다. 각 대학에서 지원하는 1인당 졸업 관련 예산은 각각 9천 원, 1만5천 원, 17만2천 원, 45만 원, 47만 원으로 대학마다 지원 격차가 크다. 신 씨는 “올해 초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통해 학교에 ‘졸업 관련 예산을 배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부 국립대의 경우에만 지원이 늘었다”고 답했다.

지난 2월, 노웅래<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졸업 전시 문제와 관련해 ‘등록금 및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근거에 관한 정보를 공시할 때 계열별로 분류한 정보를 포함해 공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김수민<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4월 노 의원의 법안에 공시대상정보에 실험실습 및 체육 시설에 대한 지원현황을 추가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지난달 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처음 논의돼 법안 의결 진행이 미진한 상태이다.

익명을 요구한 예술대학 교수 C씨는 “과거의 졸업 전시는 학생들의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여러 업체가 학생들과 직접 미팅하며 취업과 직결되는 행사였다”며 “현재는 여러 공모전이 활성화돼 업체가 직접 졸업 전시장까지 오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에 콘텐츠 기획 회사 ‘디노마드’는 지난 2011년 전시회 ‘GDEK’를 시작으로 전국 디자인학과 합동 졸업작품전을 개최했다. ‘GDEK’에서 확장된 전시회 ‘YCK’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며 예술대학 졸업생들의 데뷔를 위한 실질적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효철<디노마드> 씨는 “‘YCK’가 디자이너들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며 “‘YCK’를 통해 만나 창업을 하거나 기업에 취업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지적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학교는 희망자에 한해 졸업 전시 없이 작품 제출만으로 졸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C씨는 “현재는 졸업 전시가 꼭 필요하지 않은 시각디자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졸업 필수 조건으로 졸업 전시를 포함한 곳이 많다”며 “졸업 필수 조건을 변경하는 것도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C씨는 “돈 때문에 학생들이 졸업 전시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며 “미래의 예술인들을 위해 졸업 전시에 대한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균 씨는 “학생들이 졸업 작품 제작보다 전시에 집중하면서 주객이 전도된 부분이 있다”며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학생들이 전시보다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졸업준비금: 학생 개인의 졸업 작품 제작 비용과는 별개로 전시장 대관, 무대 설치 등에 사용되는 돈이다.

도움: 박효철<디노마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연덕원<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예대넷 공동대표 신민준<홍익대 회화과 13> 씨
강승아 수습기자 saaa216@hanyang.ac.kr
자료 제공: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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