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설] 대학의 학생 명예규율
[교수사설] 대학의 학생 명예규율
  • 한대신문
  • 승인 2018.11.26
  • 호수 148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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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내가 담당한 과목 중에는 ‘저작권’도 있다. 매 학기 마다 꽤 많은 학생들이 수강을 한다. A, B, C반으로 나눌 정도니까. 출석률도 좋고 열심히 듣는 학생들도 많다. 발표시간도 있는데, 학생들이 준비도 꽤 충실히 해온다. 이유는? 저작권 침해 사례가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연예인 얘기도 많이 나오고, 구글링만 해도 발표할 꺼리가 쏟아지니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강의 초, 시험 대체 리포트를 받아보고 기함을 했다. 저작권 관련 영화를 보고 저작물 자유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오라고 했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영화에 대한 블로그의 글을 ‘복붙’해왔다. 2장을 제출하라는 과제에 자랑스레 10장을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서너줄을 제외한 모든 글이 출처도 없는 남의 글이었다. 요즘 ‘카피킬러’를 비롯해 표절을 잡는 프로그램이 많다. 리포트를 그 프로그램에 한번만 돌리면 학생들이 어디에서 글을 가져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표절(剽竊)의 사전적 의미는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이다. 아마 표절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도둑질할 표(剽)에 도둑질할 절(竊)이다. 남의 창작물을 ‘도둑질’한 것이다.  

저작권 수업을 그렇게나 재밌게 듣던 학생들이 글 도둑질을 자행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리포트를 하나하나 표절 감별 프로그램에 돌려 증거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나눠주고 중간고사를 0점 받을 것인지, 과제를 다시 제출할 것인지 담판을 지었다. 덕분에 화기애애하던 수업은 싸늘해지고, 상냥하고 너그러운 척(?)해오던 까칠한 교수가 됐다. 유명 가수의 노래 표절 사건에는 흥분하던 학생들이 자신의 과제물을 하며 덤덤히 표절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윤리의식이 없기 때문일까? 안타깝지만 그것이 맞다. 

대학을 다니며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지켜야할 도리가 있다. 바로 ‘학습윤리’다. 이는 미국 대학의 ‘학생 명예규율’과도 관련이 깊다. 미국의 교육문화에서 명예규율은 미국교육의 윤리성을 잘 대변하고 있으며, 대중적이면서도 엄격하게 준수되고 있는 규율로 평가받는다. 이 명예규율에는 일반적으로 절도, 비방, 범죄와 같은 윤리적 준칙들을 포함하지만, 그 외에도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인용이나 표절을 ‘학문적 명예규율’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논문 표절로 사퇴하는 장관 후보들을 우리는 많이 봤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남의 글을 올바로 인용하는 법을 익혀왔다면 아마도 그 후보자들도 그렇게 허무하게 낙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제를 작성하면서 표절을 해본 대학생이 58%에 이르고, 리포트를 1번 이상 구매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 67%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대학에서 연구윤리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율은 43%라고 한다.

국내 대학들도 미국의 명예규율과 같은 명예제도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허울뿐인 명예제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 규범을 지키는 방식 역시 고민해야 한다. 남의 글을 훔친 죄 때문에 나랏일을 하지 못하는 후학들이 더 이상 배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런 노력은 학교와 학생이 함께 지켜나가야 할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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