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짓다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짓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11.26
  • 호수 148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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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그림책 작가

본교 건축학부(06) 출신의 정진호 작가(이하 정 작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그림책으로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공간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진실한 마음과 그만의 건축적 시선으로 특별한 그림책을 짓고 있는 정 작가. 그가 그려 온 삶을 함께 읽어 보자.

▲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정 작가의 모습이다.
▲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정 작가의 모습이다.

병원 생활의 친구, 그림책
정 작가는 어린 시절 병원에서 보낸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두 살 때 뜨거운 압력밥솥에 손을 댔다가 피부가 녹아 손가락 두 개가 붙어버리는 큰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붙어버린 두 손가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어린 시절 많은 나날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림책은 정 작가가 지루할 정도로 기나긴 병원 생활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좋은 친구였다. “병원에서 그림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 영어로 된 디즈니 캐릭터 그림책 시리즈를 반복해서 보곤 했죠. 이 시절 그림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던 것이 현재 그림책 작가가 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거 같습니다.”

건축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틔우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그림책 작가라는 진로를 선택한 건 아니다. 글쓰기와 그림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대학 진학 전까지만 해도 단지 취미 생활로 즐겼을 뿐이다. 정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건축가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저희 작은아버지가 건축가세요. 그래서 집을 만들고 꾸미는 데 굉장히 관심이 많았죠. 어릴 때부터 직접 건축과 관련된 경험을 해오다 보니,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습니다.” 

본교 건축학부에 진학한 그는 전공 수업을 들으며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틔워갔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입학 후 처음으로 들은 서현<공대 건축학부> 교수의 ‘설계 스튜디오’ 과목이다. “수업 첫날 교수님께서 종이컵 하나를 들고 오시더라고요. 그리곤 종이컵의 모양이 왜 이러한지에 대해 수강생 전원이 발표하게끔 하셨죠. 교수님은 종이컵에 적용된 모든 디자인을 일일이 설명하시며 ‘모든 사물의 디자인적 철학은 수많은 사람의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하셨어요.” 

수업을 통해 사물과 공간 그리고 사회를 읽는 눈을 넓힌 정 작가는 꿈에 더 다가가기 위해 휴학 후 건축 사무소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정말 존경하는 건축가의 사무소에 입사했기에 그의 기대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정 작가가 직접 눈으로 마주한 실제 건축 현장은 그가 꿈꾸던 것과 큰 괴리가 있었다. 주말도 없는 밤샘 작업과 건축 현장에서 자행되는 불법 행위는 그에게 큰 환멸감을 줬다.

그림책으로 이룬 건축의 꿈
8개월 만에 사무소에서 퇴사한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에 들게 됐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그림책이었다. 정 작가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그림책과 자신의 전공인 건축을 접목하고자 했다. “배경에 계단이나 난간 같은 건축적인 요소를 자주 넣어요. 그런 건축적인 배경 위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을 주로 만들죠.” 정 작가가 본격적으로 그림책 작가로 데뷔를 한 건 동화 관련 교양 과목 수업을 들으면서다. “대학교 때 당시 처음 개설된 동화 관련 교양 수업을 수강했어요. 수업 내용을 토대로 작업한 가제본 책을 교수님께 보여드렸죠. 그런데 교수님이 제 동의도 없이 제가 만든 걸 여러 출판사에 보내신 거예요! 그중에 한 군데서 연락이 와 계약을 맺었고, 제 첫 작품인 「위를 봐요!」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데뷔한 정 작가는 특유의 건축적인 시선을 접목한 작품으로 그림책 업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정 작가의 대표작인 「위를 봐요!」와 「벽」은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프리랜서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외주 작업을 병행할 때가 있다. 이로 인해 작가 생활 초기엔 그의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에서 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그림책을 만들며 느끼는 행복이 더 크기에 현재의 길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노력이라고 하면 억지로 하는 걸 떠올리잖아요. 근데 저는 그 과정을 굉장히 즐겼어요. 한 권 한 권 책을 만드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건축과 그림책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기쁨이 배가 됐습니다.”

▲ 동화 교양을 수강할 때 처음 만든 가제본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정 작가의 모습이다. 그는 책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한 대목을 토대로 내용을 구성했다. “자기 돈으로 처음 산 금붕어를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던 소년이 책에 나오는데, 이후 소년과 금붕어가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며 그려봤습니다.”

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건축으로 그림책 만들기, 그림책으로 건축하기’라고 정의한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건축에 도전했지만, 현실에 큰 실망을 느끼며 꿈을 접었던 그. 정 작가는 벽돌 대신 그림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그림책 속 공간을 지어주며 건축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벽」이라는 작품은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건축 부문을 수상했어요. 학교를 다닐 때 제 작품을 보고 건축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림책을 그리면서도 건축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이 상을 통해 이제야 인정을 받은 거죠.”

정 작가는 그림책 작업뿐만 아니라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는 한 해에 전국을 무대로 약 200 번의 강연을 진행한다. 정 작가는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할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객의 연령층은 아동부터 성인까지 매우 다양해요. 가지각색의 독자들이 제 책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실 때 가장 뿌듯함을 느껴요. ‘작가로서의 삶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강연에서 많이 느끼는 편이죠.”

거짓말하지 않는 작가
아동들이 많이 읽을 거라는 관념과 달리 최근 그림책의 독자층은 성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 작가 역시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권하고 싶다고 한다. “보통 글보다 그림이 많으면 더 쉬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림 언어가 상징적이고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해요. 미래엔 이런 시각 언어가 중요해질 겁니다. 그림책은 시각 언어를 친숙하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정 작가는 작가로서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기 작업에 거짓말 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품에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야 해요. 일부 작가들은 자신의 삶과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게 다르더라고요. 거짓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면 결국 그 작품은 힘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경험했던 차별과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건축적 감각으로 그림책에 승화시키고 있는 그. 정 작가의 인생과 진심이 담긴 그림책들은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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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날 때 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하거든요. 저를 다섯 글자로만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거 같아요.”

사진 정예원 수습기자 lovey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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