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한 삶, 모래 위의 집
유유자적한 삶, 모래 위의 집
  • 한대신문
  • 승인 2006.07.23
  • 호수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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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이탈하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다운쉬프트족(down shift)이라 부른다.

다운쉬프트는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으로 수입과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다운쉬프트족의 특징은 원하는 삶을 위해 고소득을 기꺼이 포기하고, 가족과 자기만족에 가치를 둔다는데 있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삶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 이상적인 삶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다운쉬프트족은 지나친 개인주의와 가족이기주의를 불러올 가능성을 지니며 현실에 부딪히기보다 도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또 사회적 문제보다는 정신적 안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의식이 결여돼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의식의 결여가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권력이나 정부에 대해 충성이나 지지를 보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반항하거나 부인하지도 않는 비정치적인 태도를 말한다. 과거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무지 혹은 맹종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현대에 와서는 정치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서도 의식적으로 사적생활로 도피하는 형태를 보인다. 최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정치적 무관심이 점차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은 독재정치와 무능력한 정치인을 양성하며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정신에 반한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오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로 현대 정치 과정의 거대화와 복잡성에 있다. 유권자가 수십, 수백만으로 거대화되면 ‘나 하나쯤이야’라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또 정치적 결정이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복잡한 기구를 통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보통 사람들의 힘으로는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정치적 체념과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오는 두 번째 원인은 분업화와 기계화이다. 분업의 발달과 기계화로 사람들은 틀에 박힌 단순노동을 되풀이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졌다. 기계적인 일의 반복은 심한 피로를 자아내고 결국 사람들은 정치적인 일보다는 휴식만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비자적으로 만들게 한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매스컴의 부작용을 들 수 있다. 저속한 상업적 저널리즘은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적인 것에서 비정치적인 것으로 집중시킨다. 사람들은 심각한 정치적 상황과 선정적이고 가벼운 것중에서 후자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치적 상황은 잊혀진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가치 감각이 무뎌지고 중화되어 심각한 상황을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보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에 열광하게 하는 ‘3S정책’이 이에 속한다. 

자본주의로 인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인간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상은 상당히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상태에서의 정신적 가치 추구는 모래 위의 집과 같다. 아무리 자기만족적인 삶을 산다해도 잘못된 정치로 인해 국가 경제나 안전이 흔들리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정윤호 <공학대·화공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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