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떠난 청년 귀촌·귀농인, 그들의 삶은 어떨까
시골로 떠난 청년 귀촌·귀농인, 그들의 삶은 어떨까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8.11.12
  • 호수 148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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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빼빼로 데이? 가래떡 데이? 이날은 농업인의 날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흙 ‘土’가 겹친 土月 土日, 즉 11월 11일이 농민의 날로 지정했다.

농업인의 날을 기념해 아스팔트 바닥의 도시를 떠나 흙과 친구가 되기 위해 시골로 돌아간* 귀촌인과 귀농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사진은 귀촌인, 이보현 작가이다.
▲ 귀촌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보현 작가의 모습이다.

하고 싶으면 해야죠
작가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 하는 방랑벽에 시달렸다. “예측 가능한 삶을 사는 것이 힘들다”는 이 작가는 출판사, 여행사, 대안학교 등으로 직장을 옮겨 다녔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그녀는 곧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다니는 것도 반복하니 시시해지더라고요.” 지루함을 느끼던 이 작가는 지인을 통해 완주군에 있는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생각을 바로 실천하는 행동파 이 작가는 “귀촌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반가웠다”며 “귀촌 생활이 서울에서의 직장생활보다는 재밌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완주에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급 생활’이라 하면 흔히 먹거리에 관한 부분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더 넓은 의미의 자급 생활을 실천 중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도움 없이 하려고요. 생활에 필요한 전반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주워 쓰는 것도 자급 생활 아닐까요?” 그녀는 먹거리 자급을 위해 나물을 캐고, 이를 팔아 생활하는 ‘나물 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나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었지만 풀이 다 똑같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비록 나물 채취를 통한 먹거리 자급은 실패했지만, 이 작가의 책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을 통해 그녀가 다른 부분에서 자급 생활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혼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귀촌 생활을 즐기는 그녀에게도 ‘시골’이기에 힘든 부분은 존재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적다. 고요한 시골의 삶은 도시에 익숙한 그녀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무료한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이 작가는 ‘프리타타’라는 활동명으로 팟캐스트 채널 ‘귀촌녀의 세계란’을 시작했다. ‘귀촌녀의 세계란’은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귀촌 선배로서 하는 조언을전하는 채널이다.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이 작가에게 많은 ‘귀촌녀’들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은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맞았다. “방송에서 만난 귀촌 선배들의 이야기와 조언을 들으면서 감동받고, 그것을 전함으로써 세상에 쓸모 있는 것을 생산해내서 즐거워요.”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 마세요
그녀는 항상 주저 없이 선택하고 실천한다. “망설임 없이 한 선택이지만 선택을 하고 나면 좋은점과 나쁜 점이 같이 오는 것은 당연해요.” 이 작가는 선택 후에 올 수 있는 나쁜 결과가 두렵지만 이를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귀촌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하지 말라고 전한다. 또 그녀는 선택하고 후회하며 되돌아가는 것조차 경험이라며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고민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냥 무엇이든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 사진은 귀농인, 장평화 대표이다.
▲ 귀농인 장평화 대표의 모습이다.

새로운 형태의 농업을 개척하다
현재 해남에서 연 매출 1백억의 절임배추 판매 기업을 운영하는 장평화 대표는 20대 초반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했다. 그는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지방 행사를 하러 갔다가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들러 낚시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낚시하면서 ‘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죠.” 장 대표는 회사 사정으로 연습생을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호주에서 농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농사짓고 먹고 살아도 좋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그를 해남으로 이끌었다. “그냥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그도 처음부터 ‘장 대표’였던 것은 아니다. 농사나 양식장 일손을 돕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 장 대표는 주민들의 텃세로 고생했다. 하지만 그는 농촌을 떠나지 않고 가수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을 들으며 ‘농촌 생활’이라는 꿈을 위해 조금만 더 버티고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장 대표의 농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농업’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시골에서 직접 농사 짓는 것이 아닌 제조업과 유통업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사업을 농업이라고 정의한다. 장 대표는 동네 이장님께 빌린 비닐하우스와 절임 탱크에서 만든 해수(海水) 절임배추로 사업을 시작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해수로 절인 배추’라는 새로운 상품은 큰 인기를 얻었다. “밭 갈고 씨 뿌려서 농작물 기르는 것만 농사인가요? 더 맛있는 배추 생산을 위해 미생물을 연구하고, 배추를 절이고, 판매하는 그 모든 과정도 농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같이 만들어요, 청년 농촌 사회
장 대표는 “농촌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며 “농촌의 세대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청년들의 귀농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 중 하나로 청소년이나 새내기 귀농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청년들이 ‘농업’과 만난 적 없던 분야의 지식을 농업에 적용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는 농촌에서의 성공 비결로 성실함을 꼽았다. 장 대표는 “학교나 사회에서 배운 것을 농업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며 이러한 노력을 ‘농촌의 성실함’이라고 표현하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농업은 바쁘고 힘들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바쁜 것은 1년에 6개월 남짓”이라며 나머지 6개월은 자유라고 전했다. 그는 자유의 반년 동안 자기계발을 위해 중국어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최근에 장 대표는 직접 프로덕션을 만들어 자신의 SNS에 지역 축제에 참여한 영상이나 김장에 관한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남는 시간이 많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살 수 있어요.” 그는 그가 소망했던 여유롭고 자유로운 농촌 생활을 살고 있다. 우리도 장 대표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귀촌인: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거주지만 농•어촌으로 이동한 사람을 말한다.

사진 제공: 장평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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