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사회를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초미세먼지, ‘낙하산’
[장산곶매] 사회를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초미세먼지, ‘낙하산’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11.12
  • 호수 148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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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4년 전 방영된 드라마 「미생」은 우리 사회에 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미 만화로 인정받은 스토리의 완성도, 배우들의 명품 회사원 연기 등 「미생」이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분석은 다양했다. 필자 생각하는 「미생」의 성공 비결은 각각의 주연과 조연, 심지어 악역과 단역들의 이야기도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으며, 설득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미생」은 현실적이고 입체성 있는 캐릭터들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인간상을 잘 표현해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장그래’의 입사 PT, 사내비리 포착 순간도 아니었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며 악역의 위치에 있던 ‘상현’이 인턴에서 떨어진 이후 장그래의 회사 합격 소식을 듣고 격분하는 장면이었다. 비록 이기적이고 무례한 언행으로 정감이 가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스펙을 쌓기 위해 수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던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무런 스펙이나 검증된 능력도 없이 기회를 얻은 ‘낙하산’ 장그래는 눈엣가시와도 같았을 거다.

물론 극 중 장그래의 경우 낙하산 여부를 떠나 고졸 검정고시의 편견을 사그라뜨릴 정도로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소위 말하는 ‘빽’을 통해 인턴 기회를 얻은 건 사실이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만큼은 ‘악역’ 상현의 처지를 이해하는 시청자도 꽤 있었다.

드라마에서 ‘밉상’ 역할을 했던 상현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발생시키는 낙하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결과를 쟁취하지만, 낙하산들은 그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쏙 빼먹는다. 이처럼 불공정한 결과로 생기는 낙오자들에게 다가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뼈아프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낙하산 인사는 여러 분야에서 관행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조차 낙하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기존 보수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강력히 비판하며, 기회의 평등함, 과정의 공평함, 결과의 정의로움을 제창했던 현 정권이 과거의 부조리함을 답습하고 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다.

지난주 JT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유통에 대해 전혀 무지한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의 카페지기가 공기업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취재 결과, 그는 입시 학원 운영 경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경력을 찾기 힘들다.

지금으로썬 과연 그가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의심되는 사례가 이번 단 한 건에 불과하다면 다행이겠으나, 정부의 인사 투명성이 흔들리는 분석 결과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기업경영성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분석 결과가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47개 공공기관의 전체 임원 316명 중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한 공로로 임명된 자가 총 75명(24%)에 이른다고 한다.

‘나눠먹기식 논공행상’ 관행은 가장 먼저 도려내야 할 사회의 썩은 부위다. 공기업 임원 자리를 목표로 한 낙하산 인사가 발생한다면 그 이상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공기업도 기업이다. 적절한 능력도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경영 전권을 잡는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무 관리 계획 대상에 포함되는 기관 38곳의 부채 총합이 오는 2021년이면 510조로 불어나리라 전망했다. 더욱 투명하고 전문적인 경영이 절실한 이유이다.

지난주 주말 우리나라는 심각한 중국발(發) 초미세먼지로 뒤덮였다. 높고 푸르던 서울의 하늘은 뿌옇게 색을 잃어갔다. 초미세먼지에는 입자가 작은 중금속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어 인체에 유해하다. 한국 사회의 낙하산 문제 역시 이와 비슷하다. 낙하산 문제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치료해야 할 악성종양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지 못하는 미세먼지 문제처럼 아직 낙하산 문제에 대해서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바라본 지난주 주말 하늘이 좀 더 뿌옇게 보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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