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지만 아름다운 록의 미학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록의 미학
  • 한대신문
  • 승인 2006.07.23
  • 호수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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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반 영국은 미국에서 건너온 ‘록큰롤’이란 음악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당시 젊은이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의 바로 다음 세대로 자유와 평화, 반전 등을 내세운 비트문화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록음악은 필연처럼 그들 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록음악의 여러 조류 중에서 약간은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된 장르가 바로 ‘아트록’이다. 당시의 순수예술과 서양과 동양을 망라하는 철학과의 조우를 통해 ‘록큰롤’이라는 기반위에 ‘예술’이라는 집을 짓게 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음악이었고 중세시대의 악기를 사용하거나 클래식의 복잡하고 난해한 조곡형식을 취하기도 하며 60년대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발전해 왔다.

아트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7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유행했던 펜팔을 통한 유럽과의 교류였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영·미권의 팝송은 상당히 익숙해 있었지만 유럽의 아트록에 대한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그 것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 왔고 청년문화의 황금기, 문화적 흡수력이 대단했던 그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 아트록이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잡기에 충분한 양분이 제공되어 졌었다. 이렇게 유입된 새로운 음악은 80년대 초반에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시작에는 음악평론가 ‘성시완’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는 ‘월드뮤직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아트록의 전파에 여태까지의 인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라디오DJ로, 국내 유일한 월드뮤직 전문 음반사인 ‘시완레코드’의 창립자로, 음악평론가로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를 우리나라 아트록계의 대부로 인정받게 했다.

하지만 14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시완레코드는 어려워진 재정사정으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MP3의 영향과 젊은이들의 문화적 편식과 주체성의 상실은 우리나라 음반시장을 무너뜨렸고 시완레코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압구정동 매장은 폐업한 상태이고 홍대 앞의 ‘MYTHOS’ 매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작은 레코드점 하나 망한 것이 무슨 대수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있어서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산업’은 점점 획일화 되고 있고 게다가 수용자인 대중, 특히 젊은이들조차 그것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감성을 소멸시키고 사고의 여지를 말살하는 형태의 문화만이 생산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그 문화를 접함으로서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대중을 진정한 ‘산업적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완레코드는 음악적 문화적 다양성과 주체성을 상징하고 고급문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메타포’였으며 동시에 시완레코드의 소멸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한계와 미래를 암시하는 하나의 ‘복선’이다. 그러한 흐름 아래 존재하는 ‘대중’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분야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 영향이 눈에 보일정도로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 자신이 다양하고 좀 더 깊이 있는 문화를 접할 권리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자기 자신을 고상하게 만들 필요가 있고 획일적인 저급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것은 문화적 선택권을 부여받는 신성한 의식이며 다가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문화적 르네상스’의 신선한 미끼가 될 것이다.                  

김승일 <국문대·국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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